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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수여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12-26 01:51조회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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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gamemong.info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 그곳의 부족장은 맨손으로 짜낸 열매즙을 먼저 마신 후 한국인 손님에게 건넸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적당히 마실 경우 적은 건강 위험, 많이 마시면 간독성까지 이를 수 있는 음료다. 손님은 알고서도 한 번에 들이켰다. 함께 간 동료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주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냐”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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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웅 GIST 환경공학과 교수는 2017년 당시 그렇게 부족장의 신임을 얻고 가지고 간 자그마한 기기를 꺼내 보였다. 전기 없이도 박테리아를 99.99% 이상 제거하는 정수장치였다. 키리바시는 해수면 상승의 피해를 크게 받는 나라다. 농업은 불가능해졌고, 식수조차 얻기가 쉽지 않다. 그들 앞에서 김 교수는 장치를 선보이 백경게임랜드 고 그들을 설득했다. 기기를 전한다고 해서 그가 얻는 수익은 전혀 없었다. 그저 ‘깨끗한 식수를 먹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만든 자신의 호, ‘일도(一道)’처럼 한 길을 우직하게 걸었다. 일평생 키리바시를 포함해 피지, 라오스, 캄보디아 등 오지를 돌아다니며 세계 20여 개국에 자신이 개발한 정수장치를 보급했다. 왜 그렇게 릴짱릴게임 까지 해외 원조에 힘썼을까. 아쉽게도 그 이유를 직접 들을 수는 없다. 김 교수는 지난 8월 침샘암으로 만 6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젠틀맨’으로 기억한다. 늘 보였던 빈틈없는 모습과 패션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끝없이 베풀었다. 그의 1호 제자인 김순오 경상대 지 오션파라다이스예시 질학과 교수는 그를 “휴머니즘이 있는 연구자”라고 설명했다.
그의 연구실에는 언제나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 학생들이 많았다. 모두 가난한 개발도상국 출신으로, 김 교수에게 배운 기술을 모국에 구축하고 싶어 하는 간절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문화 배경이 다른 만큼 국내 대학원생들과 갈등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김 교수는 “마음을 너무 닫아 황금성사이트 놓지 말고 해줄 수 있는 걸 해줘라. 그들도 얼마나 힘들겠냐”고 타일렀다.
그들은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모국으로 돌아가 고위 관료가 되거나 저명한 교수가 됐다. 한국 사람들이 국제 협력을 위해 동남아를 방문할 때 그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 우군이 돼준다. 그들은 김 교수를 ‘코리안 파더’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보인다. 그의 장례식에도 먼 길을 달려와 울었다. 김 교수는 생전 “왜 우리만 누려야 하는가. 전 세계 사람들이 공평하게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베푼 호의가 외교적인 힘이 돼 돌아온다.
故 김경웅 교수(가운데 자주색 옷)가 2016년 필리핀에서 주민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김경웅 교수 유족 제공]
그는 결코 남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매사 “남이 도움을 구하면 미안할 정도로 도와라. 나중에 돌아온다”고 했다. 2022년 갑작스럽게 침샘암 말기를 판정받은 이후에도 그는 남들에게 병을 알리지 않고 남들의 부탁을 전부 들었다. 함께 진행하는 연구, 집필, 원조를 그대로 이어갔다. 계속해서 오지를 다니며 중금속 오염물질 시료를 채취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도 광양에 방사선폐기물을 연구하러 갔다. 평생을 들이마신 오염물질이 그의 병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평생 남을 도왔고, 어쩌면 그로 인해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아프다고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정도의 말이 그가 표현하는 최대한이었다. 죽음 역시 그가 평생을 연구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의 생전 마지막 소원은 배우자인 금혜승 백석대 문화예술학부 교수가 연주회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었다. 금 교수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베토벤이 귀가 안 들릴 때 만든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였다. 병이 깊어져 일을 할 수 없게 된 후에 김 교수는 병원 밖을 나오지 않았으나, 그날은 공연장을 찾았다. 연주회를 마치고 둘은 끝없이 울었다. 그날 연주회의 이름은 ‘고독 속의 신의 축복’이었다.
김 교수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다. 교수를 그만두고 나면 본격적으로 소설을 쓸 참이었다. 아쉽게도 소설은 읽어볼 수 없지만, 그의 유고작인 ‘환경, 그리고 가능성의 미래-어느 환경공학자의 마지막 담론’이 지난 20일 출간됐다. 김 교수와 그의 동료인 조재원 UNIST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교수가 함께 썼다. 김 교수는 책에서 기후위기, 인구 감소 등 미래를 우려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래위로 나누어 열등감을 가지지 않고, 대신 옆으로 서서 같은 눈높이를 갖고 서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생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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