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바다이야기 게임바다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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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금호은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12-30 03:18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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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케이드 게임 시장은 상당히 작은 편 이죠. 아케이드 게임이란 오락실에서 돈을 내고 플레이 하는 게임이라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예전 학교 앞에서 100원 넣고 게임 하던 게임기 역시 아케이드 게임이죠.
아케이드 게임은 미국과 일본에서 많이 흥행했는데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일본에는 아케이드 게임 만을 개발하는 대형 회사가 다수 존재할 만큼 큰 규모의 시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케이드 게임을 생산하는 회사가 많지 않았고,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한국에 아케이드 시장이 크지 않았던 건 2000년대 초반 이미 PC가 상용화 되기 시작하면서 스타크래프트 라는 게임이 대히트를 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굳이 게임을 하러 오락실을 갈 필요가 없었죠. 그래도 오락실 마니아들 덕에 한국 아케이드 시장도 간신히 숨은 쉬고 있었는데, 아케이드 시장을 박살 내버리는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바다이야기 사건 이죠. 바다이야기는 일본의 파칭코 게임이라 볼 수 있는 사행성 게임 입니다. 게임물등급관리위원회가 생겨난 사건이기도 하고 박연차 게이트 뇌물 사건과 함께 그 당시 참여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2001년 한국에서는 경품성 상품권이 허용됩니다. 1년 뒤인 2002 한일 월드컵의 수혜를 받기 위해 관광업계가 강력하게 요구한 결과죠. 그 당시 잡음도 많고 걱정과 우려도 많았지만 월드컵이라는 행사 때문에 경품화가 허용됩니다. 더 나아가 상품권을 현금으로 환전 해 주는 곳도 생겨나면서 도박형 게임장이 생겨나기 시작하죠.
그래도 바다이야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도박형 게임장이 있다정도였는데에이원비즈대표 차용관이 바다이야기를 개발하면서 한국 어디를 가던 볼 수 있는 게임장 바다이야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차용관이 처음 만든 게임은 스크린경마였습니다. 경마 게임만 유통하는 자회사 까지 설립하며 사업을 펼쳤고 스크린경마 3위까지 올라서죠. 하지만 이건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스크린경마는 누가 봐도 도박이고, 여러명의 인생을 망치고 있었죠. 스크린경마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는 강력한 제재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스크린경마는 종적을 감추게 됩니다. 당시 차용관은 외상으로 오락실 업주들에게 팔았던 스크린 경마 기계값을 못 받게 되었고 회사는 20억이 넘는 빚을 지고, 1년 넘게 직원들의 월급은 커녕 사채까지 쓰며 망하기 직전인 회사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04년 차용관이 일본에 가서 대박 아이템을 가지고 오죠. 당시 일본에서는
오우미노모노가타리가 대박 행진을 치고 있습니다.오우미노모노가타리란 황금메달이
바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각종 바다 생물을 맞추면 점수가 올라가는 게임이었죠. 차용관은 한국에 오자마자오우미노모노가타리짝퉁 게임을 개발 했습니다.
직원들 모두 기대하지 않았고, 심지어 본인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죠. 그렇게 개발한 바다이야기가 대 히트를 칩니다. 오락실 사장들은돈을 먼저 주겠으니 제발 기계 좀 달라며 찾아왔고, 전국 어디를 가든 바다이야기 게임장이 보이기 시작하죠. 심지어 시골의 읍내까지 바다이야기 게임장은 지금의 치킨가게 보다 훨씬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바다이야기가 대박을 치자 비슷한 부류인 황금성, 야마토 게임 등 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화려한 간판과 썬팅으로 가려 놓은 창문은 트레이드 마크와 같았습니다. 이에 차용관은 회사를 확장하고 엄청난 돈을 쓸어담죠. 대략 4만 개가 넘는 게임기를 팔았고, 1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추정되고 직원수는 70명을 넘어섭니다.
이후 사행성 사업이라며 욕을 먹은 차용관은 온라인 게임 사업을 위해 인수할 회사를 찾고 다니죠. 이런 상황에 정부와 경찰은 뭘 하고 있던 걸까요? 뭘 할 수가 없는 상황 이였습니다. 왜냐하면 합법이었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경품성 상품권이 허용 되었다는 것. 일본의 파칭코를 아시는 분이라면 바로 이해되실 겁니다. 바다이야기는 기계에서 돈이 나오지 않았죠.
법적으로 허용된 상품권이나 혹은 라이터, 경품성 물건들이 나왔습니다. 상품권은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근처 교환소에 가면 현금으로 교환을 해주었죠. 현금이 나오지 않으니 도박이 아니였고, 게임기도 나라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합법적인 게임 이었습니다. 법적으로 걸리는 건 당연히 없었죠.
당연히 나라에서 재빨리 조취를 취했어야 하지만 게임의 허가를 내주는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바다이야기 업장은 대놓고 장사를 하며 당첨금액이 얼마다 대박이다 라는 현수막 까지 걸었습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바다이야기를 알고 언론에서 다루어 졌을때도 위원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앞으로 과도한 사행성을 조장하는 게임은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라고 하기는 했지만 이미 시중에 바다이야기 게임은 퍼진 상태 였습니다.
2004년 ~ 2005년 바다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국에 퍼져나갔습니다. 바다이야기를 처음 만든 차용관뿐만 아니라 게임장을 차린 사장들, 상품권을 환전 해 주는 사람들, 게다가 게임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LCD를 만드는 회사까지 엄청난 호황을 누립니다.
하지만 검찰이 바다이야기를 눈 여겨 보기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서울 중앙 지검이 제조사를 압수수색하기 시작했고, 게임장 업주가 바다이야기의 승률을 조작한다는 소문을 듣고 수사를 꾸렸죠. 이때 압수한 상품권의 금액만 9조였습니다. 바다이야기에 대한 말들로 언론이 난리가 나고 있을 때 인터넷에서는 한 가지 말이 떠돌았죠.
여당 당시 참여정부의 유력 인사 중 한명이 게임기를 만든 회사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유진룡 문화부 차과이 경질되었는데, 이게 바다이야기 허가를 반대해서 경질되었다는 소문도 돌죠. 이건 훗날 관계가 밝혀졌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미 언론과 야당은 난리가 난 상태였죠. 게다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이 근무했던 회사까지 불똥이 튑니다.
바다이야기 게임의 제작은지코프라임 이 담당했는데,지코프라임 은 코스닥에 상장되어 있던 회사인우전시트텍 을 인수해서 우회상장을 하려고 했죠. 노지원이 근무했던 회사가우전시스텍 이란 게 밝혀지면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옵니다. 후에 검찰 조사 결과로 상관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여론은 미친 듯이 끓어오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바다이야기는 잘 운영되었습니다. 불법이 아니었으니까요. 회사는 압수수색을 당했지만 업장들은 무사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게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까지 알려져 손님이 느는 현상까지 보였죠.
매일 신문에는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게임이 위원회를 통과 했는지 밝혀졌죠. 위원회에 근무하는 사람이 뇌물을 받은 것이 적발되었고, 위원회 예심의원 일부가 오락실 업주와 동업 관계 이다 등, 유착 관계가 드러납니다. 결과적으로 바다이야기 사건은 정치권 문제가 아니었고, 위원회의 문제임이 밝혀지게 되죠. 위원회 뿐만 아니라 문화부 국장은 물론 경찰까지 뇌물을 받은 죄로 잡혀 들어 갑니다.
2007년 검찰은 바다이야기 관련 153명이 처벌 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하며, 바다이야기 사태는 끝이 납니다. 바다이야기는 많은 여파를 남겼습니다. 영등위는 게임 심의 자격이 박탈되고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생겨났으며, 한국의 아케이드 게임판은 완전히 망해버리죠.
하지만 아직까지도 바다이야기와 같은 게임장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예 대놓고 장사하는 곳도 많습니다. 경찰이 이걸 단속하려면 환전 하는 순간을 잡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냥 게임 하는 곳에 쳐들어간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겁니다. 일반 사람이 간다고 해 봤자 정상적인 게임을 하는 곳처럼 설명해주니 방법도 없죠. 주변에 사는 사람이 신고해도 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법의 허점인 것이죠.
바다이야기 사건으로 생겨난 게임물등급위원회도 문제가 많습니다. 얼마 전 집단 민원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죠. 정말 문제는 얼마 전 바다이야기를 빼다 박은 게임인바다신2라는 게임이 전체이용가로 심의를 통과했습니다. 심지어 경품까지 나오는 아케이드 게임이죠. 이걸 계기로 바다신2 게임 이외에 많은 도박류 아케이드 게임이 심의에 통과 된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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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lotmega.info
김성희 옥스퍼드대 보이스프롬 대표 옥스퍼드대 지식공유 교육기관인 보이스프롬(VOX)을 17년째 이끌고 있는 김성희 대표 [연합뉴스 사진]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영국 옥스퍼드대 석학들의 지식과 지혜를 담은 탁월한 강의를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대중이 접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플랫폼이죠. 학문적 경계를 넘어 지식과 영감을 확산시키는 것이 보이스프롬의 취지이자 목표입니다."
옥스퍼드대 지식 공유 교육기관인 보이스프롬(Voices from Oxford·VOX) 황금성오락실 을 17년째 이끄는 김성희(74) 대표는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식은 나눌수록 가치가 커지기 마련"이라며 "VOX는 석학을 인터뷰해 그들의 통찰을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나와 서강대에서 영문학 석사를 취득한 김 대표는 서강대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초빙교수, 서울대 객원 손오공릴게임 교수를 지냈다. 또 1980∼1990년대 EBS TV에서 고교영어를 시작으로 BBC·옥스퍼드 영어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했다.
그러다 배움에 대한 집념으로 쉰살이 넘어 옥스퍼드대에 입학해 아들딸 같은 친구들과 공부하며 영어영문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2009년 VOX 설립을 주도해 옥스퍼드의 대표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매 바다이야기2 진해왔다.
김 대표는 "처음 유학을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 잘나가고 있는데 왜 고생을 자처하냐, 너무 늦은 나이라는 우려가 컸다"며 "그렇지만 배움을 통한 끊임없는 자아실현과 하고자 마음먹으면 바로 실천하며 사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아왔기에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옥스퍼드 재학시절 어린 학생들과 어울리기가 바다이야기온라인 쉽지 않았는데 주말의 학생 파티에서 벨리댄서인 학우와 함께 춤을 추며 젊게 호흡하려고 하자 다들 반기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후 춤 동아리에 들어 본격적으로 배웠고 옥스퍼드대의 '댄싱퀸'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환영받는 인사가 됐다.
김 대표는 "늦은 나이에 주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덕분에 모두가 환영하는 인사가 돼 만학의 어려움을 이겨 바다이야기게임기 낼 수 있었다"며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은 나이와 환경을 뛰어넘는 성장의 원동력이란 걸 실감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VOX 탄생의 시초는 김 대표가 속했던 옥스퍼드의 39개 컬리지 중의 하나인 벨리올 칼리지 학장의 제안이었다. 그는 영상이 중요해지는 시대 옥스퍼드의 선제 대응을 위해 대학 인터넷연구소의 빌더튼 소장과 김성희 교수 및 그의 지도교수인 데니스 노블 교수를 불러 모아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제안했다.
옥스퍼드대 벨리올 칼리지에서 열린 VOX 세미나 옥스퍼드대에서 세미나를 개최한 김성희 VOX 대표(좌측 두번째)와 지도교수로 시스템 생물학 권위자인 데니스 노블 교수(좌측 세번째).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 자리에서 김 대표는 "옥스퍼드는 세계적인 명문 대학인데 유명 석학에게 배우기 위해서는 입학이 전제조건이므로 울타리가 너무 높다"며 발상을 전환해 명강의를 모든 대중에게 오픈하는 교육 플랫폼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4명이 시작한 VOX는 대학의 주요 석학 15명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할 정도로 커졌다.
김 대표는 "석학들을 찾아가 영상 인터뷰 방식으로 강의록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국, 미국, 중국 등과의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누적된 지식콘텐츠가 1천여개가 넘는다"고 소개했다.
그는 VOX는 '통섭과 융합으로 학문 간의 국경을 허무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VOX 설립부터 지금까지 대표를 맡아온 비결에 대해 그는 '신뢰·유연성·가치공유'를 꼽았다. 김 대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투명한 소통과 약속 이행을 통해 믿음을 쌓았고, 독단보다는 팀원의 목소리를 운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왔다"며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함께 성장하는 리더십'이 VOX를 이끌어온 동력"이라고 밝혔다.
그는 "옥스퍼드의 원조 친한파 교수인 노블 교수는 연구뿐만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 따듯한 조언을 해주어 왔기에 가족애를 느끼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노블 교수와 김 대표는 올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의 초빙 석좌교수로 임용됐고 지난달에는 서울대·DGIST와 함께 인공지능(AI)과 신인류에 관한 포럼에 발표자로 참석하기도 했다.
재영동포로 한국을 오가며 지식을 전파하는 일에 앞장서 온 그는 최근 한류의 막강한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며 "대학 구내에 한국슈퍼가 들어섰는데 시험 기간이 끝나면 현지 학생들이 한국 소주·라면을 사서 뒤풀이하려고 줄을 설 정도"라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현재 한국은 반도체·AI 기술에다가 K-문화 콘텐츠가 결합하면서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에서도 정점에 있다"며 "과거에는 유학 등을 통해 선진문물을 따라갔었는데 이제는 기준을 만드는 나라가 됐다"며 뿌듯해했다.
2014년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는 책을 내는 등 작가로도 활약하는 그는 "과거 60세 전후가 평균 수명이던 시절에 태어난 중년들이 이제는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며 "안주하지 말고 도전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작은 것부터 실천할수록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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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영국 옥스퍼드대 석학들의 지식과 지혜를 담은 탁월한 강의를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대중이 접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플랫폼이죠. 학문적 경계를 넘어 지식과 영감을 확산시키는 것이 보이스프롬의 취지이자 목표입니다."
옥스퍼드대 지식 공유 교육기관인 보이스프롬(Voices from Oxford·VOX) 황금성오락실 을 17년째 이끄는 김성희(74) 대표는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식은 나눌수록 가치가 커지기 마련"이라며 "VOX는 석학을 인터뷰해 그들의 통찰을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나와 서강대에서 영문학 석사를 취득한 김 대표는 서강대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초빙교수, 서울대 객원 손오공릴게임 교수를 지냈다. 또 1980∼1990년대 EBS TV에서 고교영어를 시작으로 BBC·옥스퍼드 영어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했다.
그러다 배움에 대한 집념으로 쉰살이 넘어 옥스퍼드대에 입학해 아들딸 같은 친구들과 공부하며 영어영문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2009년 VOX 설립을 주도해 옥스퍼드의 대표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매 바다이야기2 진해왔다.
김 대표는 "처음 유학을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 잘나가고 있는데 왜 고생을 자처하냐, 너무 늦은 나이라는 우려가 컸다"며 "그렇지만 배움을 통한 끊임없는 자아실현과 하고자 마음먹으면 바로 실천하며 사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아왔기에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옥스퍼드 재학시절 어린 학생들과 어울리기가 바다이야기온라인 쉽지 않았는데 주말의 학생 파티에서 벨리댄서인 학우와 함께 춤을 추며 젊게 호흡하려고 하자 다들 반기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후 춤 동아리에 들어 본격적으로 배웠고 옥스퍼드대의 '댄싱퀸'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환영받는 인사가 됐다.
김 대표는 "늦은 나이에 주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덕분에 모두가 환영하는 인사가 돼 만학의 어려움을 이겨 바다이야기게임기 낼 수 있었다"며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은 나이와 환경을 뛰어넘는 성장의 원동력이란 걸 실감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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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대 벨리올 칼리지에서 열린 VOX 세미나 옥스퍼드대에서 세미나를 개최한 김성희 VOX 대표(좌측 두번째)와 지도교수로 시스템 생물학 권위자인 데니스 노블 교수(좌측 세번째).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 자리에서 김 대표는 "옥스퍼드는 세계적인 명문 대학인데 유명 석학에게 배우기 위해서는 입학이 전제조건이므로 울타리가 너무 높다"며 발상을 전환해 명강의를 모든 대중에게 오픈하는 교육 플랫폼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4명이 시작한 VOX는 대학의 주요 석학 15명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할 정도로 커졌다.
김 대표는 "석학들을 찾아가 영상 인터뷰 방식으로 강의록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국, 미국, 중국 등과의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누적된 지식콘텐츠가 1천여개가 넘는다"고 소개했다.
그는 VOX는 '통섭과 융합으로 학문 간의 국경을 허무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VOX 설립부터 지금까지 대표를 맡아온 비결에 대해 그는 '신뢰·유연성·가치공유'를 꼽았다. 김 대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투명한 소통과 약속 이행을 통해 믿음을 쌓았고, 독단보다는 팀원의 목소리를 운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왔다"며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함께 성장하는 리더십'이 VOX를 이끌어온 동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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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 교수와 김 대표는 올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의 초빙 석좌교수로 임용됐고 지난달에는 서울대·DGIST와 함께 인공지능(AI)과 신인류에 관한 포럼에 발표자로 참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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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현재 한국은 반도체·AI 기술에다가 K-문화 콘텐츠가 결합하면서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에서도 정점에 있다"며 "과거에는 유학 등을 통해 선진문물을 따라갔었는데 이제는 기준을 만드는 나라가 됐다"며 뿌듯해했다.
2014년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는 책을 내는 등 작가로도 활약하는 그는 "과거 60세 전후가 평균 수명이던 시절에 태어난 중년들이 이제는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며 "안주하지 말고 도전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작은 것부터 실천할수록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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