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닉스로 시작하는 깊은 사랑, 깊은 에너지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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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금호은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1-27 20:28조회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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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닉스로 시작하는 깊은 사랑,
깊은 에너지에서 온다
사랑, 깊은 에너지로 시작되다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만들어주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은 때때로 지쳐가고 무뎌질 수 있습니다. 이때, 관계를 회복하고 더욱 깊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에너지입니다. 특히, 성적 에너지는 사랑을 더욱 깊고 뜨겁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비닉스 필름형은 이 성적 에너지를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남성으로서 자신감을 되찾고, 관계의 질을 한층 높여주는 비닉스의 효과를 경험해보세요. 성적 활력을 돋우고, 깊은 사랑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데 필요한 비닉스의 강력한 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성적 활력, 사랑의 깊이를 더하다
성적 에너지는 단순히 육체적인 만족을 넘어서, 정서적 연결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남성의 성적 능력이 떨어지면, 자신감도 흔들리기 시작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성적 능력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사랑을 위한 깊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 에너지는 관계를 새롭게 하고, 두 사람 간의 유대감을 더욱 깊게 만들어줍니다.
비닉스 필름형은 성적 에너지를 빠르고 강력하게 회복시켜줍니다. 필름형이라는 편리한 복용 방법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복용할 수 있고, 몇 분 내로 빠른 효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빠르고 간편한 방법으로 성적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이 비닉스의 큰 장점입니다.
필름형 비닉스, 왜 이렇게 효과적일까?
비닉스 필름형은 실데나필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남성의 발기력을 개선하는 데 뛰어난 효과를 보입니다. 실데나필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여, 성적 능력을 즉각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성분은 의약품으로서의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비닉스가 특별할까요? 그 이유는 바로 필름형이라는 혁신적인 형태에 있습니다. 다른 성적 보조제와 달리, 비닉스는 물 없이 복용 가능하고, 혀에 올려놓기만 하면 빠르게 녹아듭니다. 이로 인해 즉각적인 효과를 느낄 수 있고, 장시간 대기할 필요 없이 바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관계 회복의 첫걸음, 비닉스
남녀 간의 관계에서 성적 활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은 단지 감정적인 유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적 에너지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 관계도 자연스럽게 어색해지고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비닉스를 통해 성적 활력을 회복하면, 관계의 온도가 다시 뜨겁게 살아나게 됩니다.
비닉스는 빠르고 간편하게 성적 능력을 회복시켜, 두 사람 간의 거리를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성적 에너지가 증대되면, 자신감도 회복되며, 이는 관계의 질을 한층 더 높여줍니다. 비닉스를 사용함으로써, 긍정적인 감정과 성적인 만족을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비닉스의 장점: 빠른 효과와 간편한 사용
빠른 효과
비닉스 필름형은 물 없이 복용할 수 있으며, 몇 분 내로 효과를 느낄 수 있습니다. 평소 성적 문제로 고민하는 남성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며, 즉시 효과를 통해 빠르게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편리한 복용법
비닉스는 필름형이기 때문에 매우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습니다.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으며,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어, 바쁜 일정을 보내는 남성들에게 완벽한 해결책이 됩니다.
강력한 성분
비닉스의 핵심 성분인 실데나필은 성적 능력을 빠르게 증진시키는 효과가 입증된 성분입니다. 이 성분은 발기력 개선 외에도 성적 활력을 증진시켜, 성적인 만족을 제공합니다.
자신감 회복
비닉스는 성적 문제를 개선함으로써 남성의 자신감을 되찾게 해줍니다. 성적 능력이 개선되면, 일상적인 자신감뿐만 아니라,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더욱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됩니다.
성적 능력과 사랑의 깊은 연관성
성적 능력은 단순히 육체적인 능력이 아니라, 사랑의 깊이와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성적인 에너지가 회복되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활기를 띠고, 두 사람 간의 정서적 교감도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사랑은 성적 에너지에서 비롯된 활력이 중요한 만큼, 비닉스를 통해 이 에너지를 되살리는 것은 관계를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교감뿐만 아니라 성적 만족도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비닉스를 사용하여 성적 활력을 되찾고, 두 사람 간의 사랑을 더욱 깊고 뜨겁게 이어나가세요.
결론: 비닉스로 더 깊은 사랑, 더 뜨거운 관계
사랑을 이어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성적 에너지입니다. 비닉스 필름형은 이 에너지를 회복시켜주어, 관계 회복과 더욱 뜨거운 사랑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성적 능력을 빠르게 되살리고 자신감을 회복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다시 한 번 활기차고 깊어질 수 있습니다.
비닉스는 간편한 복용법과 빠른 효과, 그리고 강력한 성분 덕분에 성적 능력을 빠르게 개선하고, 두 사람 간의 관계를 더욱 뜨겁게 만들어 줍니다. 이제 성적 문제로 인한 고민을 덜고, 더욱 깊고 강한 사랑을 나누기 위한 첫걸음을 비닉스로 시작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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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eastorygame.top
‘강한 객관성’은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를 알고,
충분히 인지하고, 의식하고, 쓰고, 연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강한 객관성’은 ‘강한 성찰성’을 동반하는데,
자기가 하는 말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것이다.
“중국개입, 선거부정”을 외치는 이들과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내용과 표현의 책임이다.
몇달 전부터 전국의 거리에 갖가지 민망한 문구를 적은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릴게임사이트추천 ‘내일로미래로당(黨)’이 내건 “중국개입, 선거부정”도 그중 하나다.
사실 혐중 사태는 20년 전부터 진행 중이었다. 2000년대 초반 나는 자주국방 담론을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군과 우익 시민단체 관련자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때도 그들은 “미국을 이용해 한반도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우리는 남아도는 역량으로 중국을 타격하고 옛 광개토대왕 사아다쿨 영토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국방’이라며 나를 설득했다.
선거부정도 불가능하지만, 왜 하필 중국이 등장하는 것일까. 무슨 객관적 근거가 있는지 나는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이런 주장을 망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객관적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객관성(客觀性)은 객(客)의 위치, 우주전함야마토게임 즉 어떤 상황에도 개입하지 않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는 뜻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오랫동안 서구 철학을 지배해왔던 인식 주체와 대상의 분리에서 나왔다. 즉 객관성(objectivity)은 대상(object)에서 유래했다. 인식 대상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체는 이동하지만 대상은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골드몽 정물화(靜物畵)를 그릴 때 사과나 꽃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대상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근대 ‘이후’ 거센 반론에 휩싸였고, 지금은 객관성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드물다. 객관성은 경합의 장이다. 객관성은 개인의 주관성일 뿐이다. 사회는 힘 있는 사람의 주관성을 객관성이라고 여기고, 약자의 주관성은 자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객 야마토게임 관성은 힘의 원리에 의해 구성된다. 객관성 개념이 경합의 산물이라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는 어떻게 이 논쟁에 참여해야 할까.
객관성은 진리, 사실, 중립, 과학, 불편부당, 자연의 섭리 등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어서 “그 사람은 객관적이다”라는 평가는 대체로 좋은 평판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객관적이라고(옳다고) 믿는다. 자기주장을 편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개입, 선거부정”을 외치는 이들의 주장에 나는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당신들 생각에 근거가 있는가”라고 묻고 반론을 펼친다? 물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소모전이고 시간 낭비다.
주변인의 ‘강한 객관성’
객관성 논쟁에 대한 가장 치열한 사유는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일 것이다. 이들 사상은 상황에 연루되지 않는 제3자의 입장이란 가능하지 않으며 사회적 약자의 시각이 객관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히 페미니즘들(feminism/s)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사조가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각각 전제 자체가 다르다. 이처럼 페미니즘 ‘내부’는 균질적이지 않고 상호 대립적인 내용이 많다.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에코 페미니즘은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페미니즘에는 정체성의 정치도 있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페미니즘도 있다.
페미니즘 내부가 이처럼 다양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객관성을 둘러싼 사유에 많은 이론적 축적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여성들 간의 계급, 인종, 성 정체성, 장애, 지역, 나이, 국적 등에 따른 차이는 객관성을 다르게 구성하는 자원이 된다. 페미니즘의 ‘일관성 없음’, 모순, 계속적인 가치 충돌은 우리에게 사유를 요구한다. 페미니즘이 원칙이 아니라 맥락의 사상인 이유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과학철학자 샌드라 하딩(1935~1925)은 ‘강한 객관성(strong objectivity)’이라는 개념으로 이 논쟁에 개입하였다. 그는 과학 전반(공부, 인식, 학문, 지식, 언어, 기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과학자들은 누구인가, 과학의 전제는 무엇인가, 과학은 무엇을 다루는가, 과학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과학은 왜 필요한가 등이 그것이다.
이제까지의 과학은 글을(글만!) 쓸 수 있도록 선택된, 훈련된, 일상적 노동으로부터 면제받은 서구의 지배 계급 남성들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들의 과학은 구체적이기보다 추상적이고 현실 초월적이다. 아마도 경제학이나 국제정치학 등에 자주 등장하는 게임 이론이 대표적일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현실에 근거하지 않고 메타포로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이 게임 이론이다.
우리는 과학의 신화에 익숙하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이며 사심 없는 공평한 중재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관찰자와 관찰 대상은 같은 과학 장(場) 안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설정이다. 젠더, 계급, 장애, 연령, 지역, 국적 등에 의해 철저히 위계화된 사회에서 ‘사심 없는 지식’은 있을 수 없다. 논쟁의 핵심은 ‘과학과 사회’ 혹은 ‘과학 대(對) 사회’가 아니라 자연과학도 사회의 일부라는 점이다(대학을 중심으로 구분된 분과 학문 체계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위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 주변인의 경험이라고 해서 저절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인의 경험과 삶으로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작하되, 그들의 경험 자체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은 특정한 위치(position)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대표적 타자인 여성들은 사회 체제에서 귀중한 ‘이방인’이지만, 이들은 지식 생산의 디자인과 방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어왔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에게 이방인의 관점으로 사회 제도를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여성의 삶에서 본 시각은 더 쉽고 새롭게 비판적인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여성의 관점은 남성과 여성이 매일매일 참여하는 양성 간의 전쟁을 다른 쪽에서 바라본 것이다.
여성의 관점은 일상생활에서 나온다. 여성의 일상적 삶에서 본 관점은 지배 집단 남성들의 ‘통치’ 활동만을 중심으로 한 관점보다 과학적으로 더 바람직하다. 여성들은 지배 집단의 남성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배정받았고, 이로 인해 남성들은 관념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삶에서 보면 가족과 지역 네트워크가 노동조합보다 중요하다. 여성의 관점은 자연 대 문화라는 이원론(二元論)을 중재하는 데서 생겨났다. 여성은 공사 영역에 걸친 이중 노동을 한다. 여성의 노동은 남성의 노동보다 더 정신과 육체의 통일을 요구한다.
하딩의 ‘강한 객관성’ 개념은 성별로 위계화된 사회에서 여성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낯섦이, 객관성 구성에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낯섦은 모든 과학적 탐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별 차이는 과학적 자원이 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과 사회관계들에 대해 평가절하되고 방치된 삶들의 관점에서 질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사 영역이 분리된 사회에서 여성들의 생활 세계에서의 노동은 안과 밖 그리고 주변과 중심의 관계를 좀 더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내부에 있는 외부인들’의 삶이다. 이러한 상황이 사유를 촉발시키는 첫 번째 원리이다.
브레히트에 의하면 새로운 인식은 시비, 찬반, 누구를 먼저 챙기냐 마냐, 나는 거기 속하냐 아니냐를 다투기에 앞서, 주어진 옷들이 전부 내 몸에는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좋은 옛날 것’ 위에 건설하지 말고, ‘나쁜 새로운 것’ 위에 건설하라는 것이다.
‘강한 성찰성’과 표현의 책임
‘강한 객관성’을 운용한다는 것은 타자의 관점을 존중하고 타자를 만드는 사회적 조건을 염두에 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체(one)가 타자(others)와 같은 생활을 하거나 타자와 합쳐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체를 좀 더 멀리서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주체를 되돌아보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강한 객관성’은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를 알고, 충분히 인지하고, 의식하고, 쓰고, 연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강한 객관성’은 ‘강한 성찰성’을 동반하는데, 자기 자신에게로 회귀를 반복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말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것이다. 말하기의 위치성을 인식하고 자기 말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개입, 선거부정”을 외치는 이들 그리고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내용과 표현의 책임이다. 표현 이전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자기 위치를 표명해야 한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정희진의 공부’편집장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정희진의 공부’편집장
충분히 인지하고, 의식하고, 쓰고, 연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강한 객관성’은 ‘강한 성찰성’을 동반하는데,
자기가 하는 말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것이다.
“중국개입, 선거부정”을 외치는 이들과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내용과 표현의 책임이다.
몇달 전부터 전국의 거리에 갖가지 민망한 문구를 적은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릴게임사이트추천 ‘내일로미래로당(黨)’이 내건 “중국개입, 선거부정”도 그중 하나다.
사실 혐중 사태는 20년 전부터 진행 중이었다. 2000년대 초반 나는 자주국방 담론을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군과 우익 시민단체 관련자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때도 그들은 “미국을 이용해 한반도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우리는 남아도는 역량으로 중국을 타격하고 옛 광개토대왕 사아다쿨 영토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국방’이라며 나를 설득했다.
선거부정도 불가능하지만, 왜 하필 중국이 등장하는 것일까. 무슨 객관적 근거가 있는지 나는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이런 주장을 망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객관적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객관성(客觀性)은 객(客)의 위치, 우주전함야마토게임 즉 어떤 상황에도 개입하지 않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는 뜻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오랫동안 서구 철학을 지배해왔던 인식 주체와 대상의 분리에서 나왔다. 즉 객관성(objectivity)은 대상(object)에서 유래했다. 인식 대상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체는 이동하지만 대상은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골드몽 정물화(靜物畵)를 그릴 때 사과나 꽃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대상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근대 ‘이후’ 거센 반론에 휩싸였고, 지금은 객관성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드물다. 객관성은 경합의 장이다. 객관성은 개인의 주관성일 뿐이다. 사회는 힘 있는 사람의 주관성을 객관성이라고 여기고, 약자의 주관성은 자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객 야마토게임 관성은 힘의 원리에 의해 구성된다. 객관성 개념이 경합의 산물이라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는 어떻게 이 논쟁에 참여해야 할까.
객관성은 진리, 사실, 중립, 과학, 불편부당, 자연의 섭리 등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어서 “그 사람은 객관적이다”라는 평가는 대체로 좋은 평판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객관적이라고(옳다고) 믿는다. 자기주장을 편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개입, 선거부정”을 외치는 이들의 주장에 나는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당신들 생각에 근거가 있는가”라고 묻고 반론을 펼친다? 물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소모전이고 시간 낭비다.
주변인의 ‘강한 객관성’
객관성 논쟁에 대한 가장 치열한 사유는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일 것이다. 이들 사상은 상황에 연루되지 않는 제3자의 입장이란 가능하지 않으며 사회적 약자의 시각이 객관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히 페미니즘들(feminism/s)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사조가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각각 전제 자체가 다르다. 이처럼 페미니즘 ‘내부’는 균질적이지 않고 상호 대립적인 내용이 많다.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에코 페미니즘은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페미니즘에는 정체성의 정치도 있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페미니즘도 있다.
페미니즘 내부가 이처럼 다양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객관성을 둘러싼 사유에 많은 이론적 축적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여성들 간의 계급, 인종, 성 정체성, 장애, 지역, 나이, 국적 등에 따른 차이는 객관성을 다르게 구성하는 자원이 된다. 페미니즘의 ‘일관성 없음’, 모순, 계속적인 가치 충돌은 우리에게 사유를 요구한다. 페미니즘이 원칙이 아니라 맥락의 사상인 이유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과학철학자 샌드라 하딩(1935~1925)은 ‘강한 객관성(strong objectivity)’이라는 개념으로 이 논쟁에 개입하였다. 그는 과학 전반(공부, 인식, 학문, 지식, 언어, 기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과학자들은 누구인가, 과학의 전제는 무엇인가, 과학은 무엇을 다루는가, 과학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과학은 왜 필요한가 등이 그것이다.
이제까지의 과학은 글을(글만!) 쓸 수 있도록 선택된, 훈련된, 일상적 노동으로부터 면제받은 서구의 지배 계급 남성들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들의 과학은 구체적이기보다 추상적이고 현실 초월적이다. 아마도 경제학이나 국제정치학 등에 자주 등장하는 게임 이론이 대표적일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현실에 근거하지 않고 메타포로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이 게임 이론이다.
우리는 과학의 신화에 익숙하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이며 사심 없는 공평한 중재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관찰자와 관찰 대상은 같은 과학 장(場) 안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설정이다. 젠더, 계급, 장애, 연령, 지역, 국적 등에 의해 철저히 위계화된 사회에서 ‘사심 없는 지식’은 있을 수 없다. 논쟁의 핵심은 ‘과학과 사회’ 혹은 ‘과학 대(對) 사회’가 아니라 자연과학도 사회의 일부라는 점이다(대학을 중심으로 구분된 분과 학문 체계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위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 주변인의 경험이라고 해서 저절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인의 경험과 삶으로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작하되, 그들의 경험 자체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은 특정한 위치(position)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대표적 타자인 여성들은 사회 체제에서 귀중한 ‘이방인’이지만, 이들은 지식 생산의 디자인과 방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어왔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에게 이방인의 관점으로 사회 제도를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여성의 삶에서 본 시각은 더 쉽고 새롭게 비판적인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여성의 관점은 남성과 여성이 매일매일 참여하는 양성 간의 전쟁을 다른 쪽에서 바라본 것이다.
여성의 관점은 일상생활에서 나온다. 여성의 일상적 삶에서 본 관점은 지배 집단 남성들의 ‘통치’ 활동만을 중심으로 한 관점보다 과학적으로 더 바람직하다. 여성들은 지배 집단의 남성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배정받았고, 이로 인해 남성들은 관념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삶에서 보면 가족과 지역 네트워크가 노동조합보다 중요하다. 여성의 관점은 자연 대 문화라는 이원론(二元論)을 중재하는 데서 생겨났다. 여성은 공사 영역에 걸친 이중 노동을 한다. 여성의 노동은 남성의 노동보다 더 정신과 육체의 통일을 요구한다.
하딩의 ‘강한 객관성’ 개념은 성별로 위계화된 사회에서 여성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낯섦이, 객관성 구성에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낯섦은 모든 과학적 탐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별 차이는 과학적 자원이 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과 사회관계들에 대해 평가절하되고 방치된 삶들의 관점에서 질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사 영역이 분리된 사회에서 여성들의 생활 세계에서의 노동은 안과 밖 그리고 주변과 중심의 관계를 좀 더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내부에 있는 외부인들’의 삶이다. 이러한 상황이 사유를 촉발시키는 첫 번째 원리이다.
브레히트에 의하면 새로운 인식은 시비, 찬반, 누구를 먼저 챙기냐 마냐, 나는 거기 속하냐 아니냐를 다투기에 앞서, 주어진 옷들이 전부 내 몸에는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좋은 옛날 것’ 위에 건설하지 말고, ‘나쁜 새로운 것’ 위에 건설하라는 것이다.
‘강한 성찰성’과 표현의 책임
‘강한 객관성’을 운용한다는 것은 타자의 관점을 존중하고 타자를 만드는 사회적 조건을 염두에 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체(one)가 타자(others)와 같은 생활을 하거나 타자와 합쳐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체를 좀 더 멀리서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주체를 되돌아보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강한 객관성’은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를 알고, 충분히 인지하고, 의식하고, 쓰고, 연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강한 객관성’은 ‘강한 성찰성’을 동반하는데, 자기 자신에게로 회귀를 반복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말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것이다. 말하기의 위치성을 인식하고 자기 말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개입, 선거부정”을 외치는 이들 그리고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내용과 표현의 책임이다. 표현 이전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자기 위치를 표명해야 한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정희진의 공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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