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트라남성 건강의 핵심, 성에서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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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수여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2-04 10:36조회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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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트라남성 건강의 핵심, 성에서 시작하다
남성 건강, 성에서 출발
남성의 건강은 단순히 체력이나 운동 능력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 건강은 남성의 전반적인 웰빙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많은 남성들이 성기능 저하로 인해 자존감에 큰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는 삶의 질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성 건강은 단순한 신체적 기능뿐만 아니라, 정서적, 심리적 상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기능 저하가 발생하면 남성은 불안, 스트레스, 우울감을 느끼기도 하고, 이는 전반적인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성기능 저하는 남성들이 늦은 나이에 접어들며 흔히 겪게 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나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다양한 외부적 요인, 생활 습관, 심리적 스트레스 등도 성기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바로, 레비트라Levitra와 같은 의약품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1. 성기능 저하의 원인과 해결책
성기능 저하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원인들을 이해하는 것은 효과적인 치료의 첫걸음입니다.
1.1 심리적 요인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등은 성기능 저하의 주요 원인입니다. 많은 남성들이 직장이나 개인적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적인 욕구가 감소하게 되고, 발기부전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과거에 성적 성과에 대해 실패를 경험한 남성들은 성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성기능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2 신체적 요인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 질환 등은 성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환들은 혈액 순환을 방해하고, 음경으로의 혈류를 감소시켜 발기부전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지혈증, 흡연, 과음 등도 성기능 저하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입니다.
1.3 생활 습관과 환경
운동 부족, 불규칙한 식사, 과도한 음주 및 흡연은 남성의 성기능에 영향을 미칩니다. 건강한 성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생활 습관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많은 남성들이 바쁜 일정을 이유로 건강한 습관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레비트라의 역할과 효과
레비트라는 남성의 성기능 회복을 돕는 PDE5 억제제입니다. 레비트라Levitra의 주요 성분인 바데나필Vardenafil은 발기부전 치료에 효과적인 약물로, 음경으로의 혈류를 증가시켜 성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을 높여줍니다. 이 약물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1 빠른 효과
레비트라는 복용 후 30분 이내에 효과를 나타내며, 약 4~5시간 동안 성적 자극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이는 남성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도 성적 자극에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2.2 다양한 용량 선택
레비트라는 5mg, 10mg, 20mg 등 다양한 용량으로 제공됩니다. 이는 각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적절한 용량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며,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맞춤형 치료가 가능합니다.
2.3 안전한 사용
레비트라는 일반적으로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는 약물이지만, 특정 약물과의 상호작용이나 기저 질환에 따라 복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용 전에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는 복용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성기능 회복을 위한 일상 속 실천 방법
레비트라와 같은 의약품 외에도, 성기능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상 속 실천 방법들이 있습니다.
3.1 운동과 체중 관리
규칙적인 운동은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성기능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유산소 운동은 혈류를 증가시키고 심혈관 건강을 촉진하여 성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체중 관리도 중요합니다. 과체중은 당뇨병 및 고혈압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성기능 저하의 원인입니다.
3.2 균형 잡힌 식사
건강한 성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양소가 풍부한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합니다. 아연, 비타민 E, C, D 등은 성 건강에 중요한 영양소로, 이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고지방 음식을 피하고, 가공식품보다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3.3 스트레스 관리
스트레스는 성기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 명상, 요가, 심호흡 등을 실천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또한, 취미 활동이나 여가 시간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4. 레비트라와 함께하는 건강한 남성 라이프
레비트라는 성기능 회복을 위한 중요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남성의 전반적인 건강 회복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성기능 문제는 단순한 신체적 문제에 그치지 않으며, 정서적, 심리적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기능 회복을 위해서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레비트라는 성기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지속적인 성 건강 유지를 위해서는 생활 습관의 개선이 필수적입니다. 남성의 성 건강은 단기적인 해결책보다는 장기적인 관리와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성적인 자존감을 회복하고, 더욱 활기찬 라이프스타일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결론
성기능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가 아닙니다. 레비트라Levitra와 같은 약물은 그 해결책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으며, 일상적인 관리와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건강한 성기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남성 건강의 중심에 성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성기능 회복은 남성 건강을 회복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며, 이는 전반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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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reelnara.info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열린 2025년 2월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을 둘러싼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영원 한겨레 기자
이제 정치철학자 샹탈 무페의 ‘정동’을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무페는 1985년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쓴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급진민주주의 이론가다. 2000년대 이후로 그는 라클라우와 함께 포퓰리즘 현상에 깊이 천착했다. 라클라우는 2005년 ‘포퓰리즘 이성’이라는 문제작을 발표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한 바 있고, 무페는 최근 ‘좌파 포퓰리즘’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소책자를 잇달아 출간했다.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와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좌파 포퓰리즘과 정동의 힘’ 등이 그것이다.
이 글이 계속 강조하고 설명해온 것처럼, 오늘날 극우 현상은 민주주의 위기의 결과다. 또한 그것은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만이 아니 바다이야기게임방법 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이라는 점에서 정확히 포퓰리즘의 문제다. 포퓰리즘, 곧 대중주의는 오랫동안 엘리트들, 심지어 대중 자신으로부터도 경멸당해왔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는 장기적으로 공동체의 미래를 망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트럼피즘과 유럽 극우 정당의 꾸준한 성장을 보면, 부정하든 긍정하든 그것이 기능부전에 빠진 대의민주주의에 어떤 식 릴박스 으로든 충격과 변화를 일으켰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바로 그것이 라클라우나 무페 같은 정치철학자가 포퓰리즘을 연구한 이유다.
포퓰리즘 악마화 대신 들여다봐야 할 것들
그런데 라클라우와 무페의 관점은 포퓰리즘에 대한 기성 언론이나 주류 학계의 시선과는 좀 달랐다.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포퓰리즘은 많은 학 쿨사이다릴게임 자에게 일종의 병리적 현상으로 다루어진다. 즉, 포퓰리즘은 ‘정상 정치’에서 벗어난 비정상적 상황이며, (분석되고 연구될 필요는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교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클라우와 무페에게 포퓰리즘은 병리적이고 비정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가능한 조건을 구성한다. 요컨대 포퓰리즘은 치료해야 할 ‘정치적 질병’이기는커녕 오히려 정치의 본성 릴게임꽁머니 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글은 라클라우보다는 무페의 논의에 집중할 것이다. ‘정동’을 스쳐가듯 말하지만 충동, 동일시 같은 프로이트적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라클라우에 비해 무페는 감정, 정념, ‘정동’ 등의 개념을 더 자주, 또한 직접적으로 도입하기 때문이다. 미리 밝혀두자면, 라클라우의 ‘정동’론은 의미의 차원과 ‘정동’의 차원이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할 뿐 그것이 어떻게 그러하며 왜 중요한지를 구체적으로 해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페의 그것과 동일한 한계를 가진다.1
무페의 ‘정동’(affect)은 앞서 지지 파파카리시와 브라이언 마수미의 “정동”, 그리고 리사 펠드먼 배럿의 ‘정동’과는 또 다른 의미와 맥락을 가진다. 무페는 이렇게 말한다.
“내 성찰은 내가 정념(passion)이라 부르는 정동의 특정한 유형에 관한 것이다. 나는 ‘정념’이란 우리/그들이라는 동일화의 형태를 구성하는 과정 속 정치 영역에서의 중요한 부분인 공통(common) 정동을 의미한다고 본다. 내가 옹호하는 관점에서 보면 정념과 감정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 영역에서 우리는 항상 집단적 동일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감정’이라는 용어는 집단적 동일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일반적으로 개인에게 부착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학 분야에서 집단적인 정치적 동일성들 사이 대립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공통 정동과 ‘정념’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2
같은 책에서 무페는 “정동은 이 의미화에 담겨지게 되면, 의미화에 힘을 부여하게 될 리비도적 힘”이며 “관념이 권력을 얻게 되는 것은 관념과 정동이 결합하게 될 때”(70쪽)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동을 다룰 것을 외면하는 정책은 대중들로부터 공감을 얻기 힘들 것”(73쪽)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다른 책에서 무페는 “성공적인 좌파 포퓰리즘 전략 구상을 위해, 정치에서 정동이 가진 중요한 역할과 정동을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을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3
논의를 종합하면, 우선 무페가 정치를 사유할 때 ‘집단적 동일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 과정은 기본적으로 ‘우리’와 ‘저들’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가깝다고 생각하는 무리를 동일시하는 경향성은 일상적 심리 기제이지만 ‘정치를’ 생산하고 ‘정치로부터’ 생산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집단적 동일화에서 정동이 중요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무페는 정념 또는 ‘정동’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와 ‘저들’을 나누는 것이 정치의 과정
명료한 주장이고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무페가 ‘정동’을 “의미화에 담겨지고” “의미화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라 규정하는 데서 명확히 알 수 있는 부분은, 그가 이데올로기 혹은 담론의 차원을 명백히 상정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무페의 ‘정동’은 이데올로기 및 담론적 층위가 사실상 증발한 파파카리시·마수미의 “정동” 개념과 상당히 다르다. 물론 좌파의 현실 개입 전략을 일관되게 사유해온 무페에게 담론이나 이데올로기 개념은 쉽게 배제하거나 포기될 수 없는 것일 테다.
그러나 한편으로 무페의 ‘정동’은 마수미의 “정동”과 중요한 공통점을 가진다. “개인에게 부착된 것”이라는 이유에서 감정 개념을 배제하고 ‘정동’에 특권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즉, 감정은 “개인에게 부착된 것”이어서 “집단적 동일성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층위를 분석할 수 있는 개념인 정념 혹은 (공통) ‘정동’만을 중시하겠다는 게 무페의 의도로 보인다. 이를 도식화하면 ‘감정=개인적인 것’ ‘정념·‘정동’=집단적·정치적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별이 논리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타당하냐이며, 더불어 ‘정동’과 감정을 구별해서 얻을 실익이 무엇이냐다.
정동은 정말 ‘개인 감정’과 다른가?
‘정동’의 탈개인화와 특권화는 마수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입증 책임’을 요구받는다. 즉, ‘개인에게 부착되지 않고 오직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어떤 심적 상태’란 무엇인지 밝힐 책임은 주장을 제기한 쪽에 있다. 아쉽게도 무페는 논리적 설명이나 설득력 있는 사례를 제시하지 않는다. 무페의 ‘정동’은 파파카리시가 말한 “정동”, 그러니까 ‘흥겨운 음악에 자기도 모르게 몸이 동조하는’ 현상과도 다르다. 무페의 경우 단순한 신체적 동조 현상이 아니라 정체성 형성, 집단적 동일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페가 말하는 정념 내지 공통 ‘정동’이라는 것을 막연히 추정할 수밖에 없다. 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소속감’이 있겠다. 정당, 동아리, 부족 등 다양한 종류의 ‘무리’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때로 집단행동의 강렬한 에너지가 된다는 점에서 ‘정치적’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속감은 개인에게 부착되지 않은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소속감은 집단 감정이지만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이며 그 양과 질 역시 개인의 인식과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르다. 더구나 무페는 ‘정동’을 감정과 구별할 것을 그렇게 강조했으면서 정작 뒤에 가서는 ‘정동’을 감정과 사실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예컨대 무페는 원한(ressentiment)을 “비난받아야 할 정동”이라 주장한다. 또한 그는 원한이 “언제나 개개인이 잘못된 뭔가의 피해자가 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구체적인 상황에 맞서는 분노의 반응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4
이러한 “원한”이나 “분노”야말로 개인에게 부착된 감정 아닌가? 또한 그것은 특별히 정치화되기 쉬운 개인적 감정인 자부심이나 수치심과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제1588호에서 다룬 ‘미국 극우의 감정’ 참조)
설령 개인으로는 느끼지 않지만 집단일 때만 나타나는 어떤 느낌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집단적 동일화, 정체성 형성, 나아가 정치 행위로 이어지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어쩌면 마수미나 무페가 (개인적) 감정과 구별된 특권적 개념으로서 “정동” 혹은 ‘정동’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느낌이 어떻게 집단 행위, 곧 정치로 연결되는가’라는 난감하고 복잡한 질문을 편리하게 우회할 수 있어서는 아닐까? 다시 말해 감정을 오로지 내밀한 사적 차원의 문제로 한쪽 구석에 치워두면, 공적 차원에 상존하는 비합리성과 비이성을 “정동” 혹은 ‘정동’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분석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2025년 4월19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인근에서 자유통일당이 연 ‘국민저항권 광화문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윤 어게인’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중요한 건 ‘개인 감정’을 확대재생산하는 조건
그러나 감정 개념을 피해 어떤 특수한 개념을 자꾸 상정하더라도 결국 도돌이표처럼 다시 감정 개념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스피노자가 일찍이 통찰했듯 정서는 인간이 서로를 모방하는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정치 현상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대부분의 감정, 이를테면 분노·수치심·자부심·울분 등은 자극에 대한 무조건반사 같은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의식되고 성찰된 반응이며, 개인 차원과 집단 차원에서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는 피드백 루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핵심은 집단적 ‘정동’과 개인적 감정을 구별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부분은, 개인의 감정을 집단적·정치적 감정으로 전환하고 다시 그것이 개인의 감정을 확대재생산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떻게 이데올로기화/정당화되는가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감정/정념/‘정동’을 의미화나 담론적 실천과 연결하려는 무페의 시도 자체는 이론으로든 정세로든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사유의 밀도는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무페의 ‘정동’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일단 멈추기로 하자. 다음 회에서는 스피노자의 정서론이 왜 오늘날 극우 감정을 분석하는 데 여전히 유용할 수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1.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이승원 옮김, ‘포퓰리즘 이성’, 빨간소금, 181쪽, 2026
2. 샹탈 무페, 이승원 옮김,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좌파 포퓰리즘과 정동의 힘’, 문학세계사, 63쪽, 2022
3. 샹탈 무페, 이승원 옮김,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문학세계사, 117쪽, 2019
4. 샹탈 무페, 이승원 옮김,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좌파 포퓰리즘과 정동의 힘’, 문학세계사, 74~75쪽, 2022
이제 정치철학자 샹탈 무페의 ‘정동’을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무페는 1985년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쓴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급진민주주의 이론가다. 2000년대 이후로 그는 라클라우와 함께 포퓰리즘 현상에 깊이 천착했다. 라클라우는 2005년 ‘포퓰리즘 이성’이라는 문제작을 발표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한 바 있고, 무페는 최근 ‘좌파 포퓰리즘’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소책자를 잇달아 출간했다.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와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좌파 포퓰리즘과 정동의 힘’ 등이 그것이다.
이 글이 계속 강조하고 설명해온 것처럼, 오늘날 극우 현상은 민주주의 위기의 결과다. 또한 그것은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만이 아니 바다이야기게임방법 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이라는 점에서 정확히 포퓰리즘의 문제다. 포퓰리즘, 곧 대중주의는 오랫동안 엘리트들, 심지어 대중 자신으로부터도 경멸당해왔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는 장기적으로 공동체의 미래를 망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트럼피즘과 유럽 극우 정당의 꾸준한 성장을 보면, 부정하든 긍정하든 그것이 기능부전에 빠진 대의민주주의에 어떤 식 릴박스 으로든 충격과 변화를 일으켰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바로 그것이 라클라우나 무페 같은 정치철학자가 포퓰리즘을 연구한 이유다.
포퓰리즘 악마화 대신 들여다봐야 할 것들
그런데 라클라우와 무페의 관점은 포퓰리즘에 대한 기성 언론이나 주류 학계의 시선과는 좀 달랐다.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포퓰리즘은 많은 학 쿨사이다릴게임 자에게 일종의 병리적 현상으로 다루어진다. 즉, 포퓰리즘은 ‘정상 정치’에서 벗어난 비정상적 상황이며, (분석되고 연구될 필요는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교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클라우와 무페에게 포퓰리즘은 병리적이고 비정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가능한 조건을 구성한다. 요컨대 포퓰리즘은 치료해야 할 ‘정치적 질병’이기는커녕 오히려 정치의 본성 릴게임꽁머니 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글은 라클라우보다는 무페의 논의에 집중할 것이다. ‘정동’을 스쳐가듯 말하지만 충동, 동일시 같은 프로이트적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라클라우에 비해 무페는 감정, 정념, ‘정동’ 등의 개념을 더 자주, 또한 직접적으로 도입하기 때문이다. 미리 밝혀두자면, 라클라우의 ‘정동’론은 의미의 차원과 ‘정동’의 차원이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할 뿐 그것이 어떻게 그러하며 왜 중요한지를 구체적으로 해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페의 그것과 동일한 한계를 가진다.1
무페의 ‘정동’(affect)은 앞서 지지 파파카리시와 브라이언 마수미의 “정동”, 그리고 리사 펠드먼 배럿의 ‘정동’과는 또 다른 의미와 맥락을 가진다. 무페는 이렇게 말한다.
“내 성찰은 내가 정념(passion)이라 부르는 정동의 특정한 유형에 관한 것이다. 나는 ‘정념’이란 우리/그들이라는 동일화의 형태를 구성하는 과정 속 정치 영역에서의 중요한 부분인 공통(common) 정동을 의미한다고 본다. 내가 옹호하는 관점에서 보면 정념과 감정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 영역에서 우리는 항상 집단적 동일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감정’이라는 용어는 집단적 동일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일반적으로 개인에게 부착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학 분야에서 집단적인 정치적 동일성들 사이 대립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공통 정동과 ‘정념’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2
같은 책에서 무페는 “정동은 이 의미화에 담겨지게 되면, 의미화에 힘을 부여하게 될 리비도적 힘”이며 “관념이 권력을 얻게 되는 것은 관념과 정동이 결합하게 될 때”(70쪽)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동을 다룰 것을 외면하는 정책은 대중들로부터 공감을 얻기 힘들 것”(73쪽)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다른 책에서 무페는 “성공적인 좌파 포퓰리즘 전략 구상을 위해, 정치에서 정동이 가진 중요한 역할과 정동을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을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3
논의를 종합하면, 우선 무페가 정치를 사유할 때 ‘집단적 동일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 과정은 기본적으로 ‘우리’와 ‘저들’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가깝다고 생각하는 무리를 동일시하는 경향성은 일상적 심리 기제이지만 ‘정치를’ 생산하고 ‘정치로부터’ 생산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집단적 동일화에서 정동이 중요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무페는 정념 또는 ‘정동’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와 ‘저들’을 나누는 것이 정치의 과정
명료한 주장이고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무페가 ‘정동’을 “의미화에 담겨지고” “의미화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라 규정하는 데서 명확히 알 수 있는 부분은, 그가 이데올로기 혹은 담론의 차원을 명백히 상정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무페의 ‘정동’은 이데올로기 및 담론적 층위가 사실상 증발한 파파카리시·마수미의 “정동” 개념과 상당히 다르다. 물론 좌파의 현실 개입 전략을 일관되게 사유해온 무페에게 담론이나 이데올로기 개념은 쉽게 배제하거나 포기될 수 없는 것일 테다.
그러나 한편으로 무페의 ‘정동’은 마수미의 “정동”과 중요한 공통점을 가진다. “개인에게 부착된 것”이라는 이유에서 감정 개념을 배제하고 ‘정동’에 특권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즉, 감정은 “개인에게 부착된 것”이어서 “집단적 동일성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층위를 분석할 수 있는 개념인 정념 혹은 (공통) ‘정동’만을 중시하겠다는 게 무페의 의도로 보인다. 이를 도식화하면 ‘감정=개인적인 것’ ‘정념·‘정동’=집단적·정치적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별이 논리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타당하냐이며, 더불어 ‘정동’과 감정을 구별해서 얻을 실익이 무엇이냐다.
정동은 정말 ‘개인 감정’과 다른가?
‘정동’의 탈개인화와 특권화는 마수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입증 책임’을 요구받는다. 즉, ‘개인에게 부착되지 않고 오직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어떤 심적 상태’란 무엇인지 밝힐 책임은 주장을 제기한 쪽에 있다. 아쉽게도 무페는 논리적 설명이나 설득력 있는 사례를 제시하지 않는다. 무페의 ‘정동’은 파파카리시가 말한 “정동”, 그러니까 ‘흥겨운 음악에 자기도 모르게 몸이 동조하는’ 현상과도 다르다. 무페의 경우 단순한 신체적 동조 현상이 아니라 정체성 형성, 집단적 동일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페가 말하는 정념 내지 공통 ‘정동’이라는 것을 막연히 추정할 수밖에 없다. 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소속감’이 있겠다. 정당, 동아리, 부족 등 다양한 종류의 ‘무리’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때로 집단행동의 강렬한 에너지가 된다는 점에서 ‘정치적’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속감은 개인에게 부착되지 않은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소속감은 집단 감정이지만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이며 그 양과 질 역시 개인의 인식과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르다. 더구나 무페는 ‘정동’을 감정과 구별할 것을 그렇게 강조했으면서 정작 뒤에 가서는 ‘정동’을 감정과 사실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예컨대 무페는 원한(ressentiment)을 “비난받아야 할 정동”이라 주장한다. 또한 그는 원한이 “언제나 개개인이 잘못된 뭔가의 피해자가 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구체적인 상황에 맞서는 분노의 반응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4
이러한 “원한”이나 “분노”야말로 개인에게 부착된 감정 아닌가? 또한 그것은 특별히 정치화되기 쉬운 개인적 감정인 자부심이나 수치심과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제1588호에서 다룬 ‘미국 극우의 감정’ 참조)
설령 개인으로는 느끼지 않지만 집단일 때만 나타나는 어떤 느낌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집단적 동일화, 정체성 형성, 나아가 정치 행위로 이어지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어쩌면 마수미나 무페가 (개인적) 감정과 구별된 특권적 개념으로서 “정동” 혹은 ‘정동’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느낌이 어떻게 집단 행위, 곧 정치로 연결되는가’라는 난감하고 복잡한 질문을 편리하게 우회할 수 있어서는 아닐까? 다시 말해 감정을 오로지 내밀한 사적 차원의 문제로 한쪽 구석에 치워두면, 공적 차원에 상존하는 비합리성과 비이성을 “정동” 혹은 ‘정동’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분석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2025년 4월19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인근에서 자유통일당이 연 ‘국민저항권 광화문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윤 어게인’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중요한 건 ‘개인 감정’을 확대재생산하는 조건
그러나 감정 개념을 피해 어떤 특수한 개념을 자꾸 상정하더라도 결국 도돌이표처럼 다시 감정 개념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스피노자가 일찍이 통찰했듯 정서는 인간이 서로를 모방하는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정치 현상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대부분의 감정, 이를테면 분노·수치심·자부심·울분 등은 자극에 대한 무조건반사 같은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의식되고 성찰된 반응이며, 개인 차원과 집단 차원에서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는 피드백 루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핵심은 집단적 ‘정동’과 개인적 감정을 구별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부분은, 개인의 감정을 집단적·정치적 감정으로 전환하고 다시 그것이 개인의 감정을 확대재생산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떻게 이데올로기화/정당화되는가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감정/정념/‘정동’을 의미화나 담론적 실천과 연결하려는 무페의 시도 자체는 이론으로든 정세로든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사유의 밀도는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무페의 ‘정동’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일단 멈추기로 하자. 다음 회에서는 스피노자의 정서론이 왜 오늘날 극우 감정을 분석하는 데 여전히 유용할 수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1.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이승원 옮김, ‘포퓰리즘 이성’, 빨간소금, 181쪽, 2026
2. 샹탈 무페, 이승원 옮김,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좌파 포퓰리즘과 정동의 힘’, 문학세계사, 63쪽, 2022
3. 샹탈 무페, 이승원 옮김,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문학세계사, 117쪽, 2019
4. 샹탈 무페, 이승원 옮김,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좌파 포퓰리즘과 정동의 힘’, 문학세계사, 74~75쪽,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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