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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의 나이 차이에도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후덕죽 셰프(왼쪽)와 천상현 셰프. 둘은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천 셰프를 청와대 중식 담당 요리사로 추천한 이가 후 셰프다. 천 셰프는 후 셰프를 ‘사부’라 부른다. 김혜윤 기자
중식 프라이팬 웍의 무게는 최소 1.5㎏이다. 뜨거운 불판에서 묵직한 웍을 손목이 나갈 정도로 돌리는 중식 요리사는 한때 존중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음식은 국민 대다수의 추억과 직결된 ‘솔푸드’였다. 졸업식, 입학식 때마다 먹은 음식이 짜장면이다. 중국에는 없는 짜장면. 한국 중식은 야마토게임연타 중식의 출발지 중국이나 대만과 달리 독자적인 위상을 정립해왔다. 단언컨대 한국 중식은 이제 한식 범주에 있다. 본래 음식은 먹는 이의 감성과 취향이 정체성을 결정한다.
한국 식문화가 다채롭게 발전하면서 중식 요리사는 이제 주목받는 직업이 됐다. 그 중심에 후덕죽(77) 앰배서더 서울 풀만호텔 ‘호빈’ 셰프와 천상현(58) ‘천상현의 천상’ 백경게임 대표가 있다. 후 셰프는 42년간 신라호텔 ‘팔선’을 이끈 이로, 요리 경력만 58년인 고수이자 한국 중식의 대명사다. 천 셰프는 팔선에서 경력을 쌓은 뒤 1998년 청와대에 들어가 20년간 대통령 5명의 밥상을 차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다. 이 둘은 팔선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둘의 나이 차이는 19년. 거의 강산이 두번 바 릴게임무료 뀌는 시간이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이하 흑백요리사)에서 이들은 단박에 그 시간의 간극을 메우고 요리의 진수를 보여줬다. 상대를 꺾어야 할 대결의 장에서 이들이 보여준 서로를 향한 존경은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다. 각자도생, 경쟁에서의 승리만이 난무하는 지금, 이 둘의 우정은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둘의 우정을 설 연휴를 앞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둔 지난 10일 목격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후덕죽 셰프. 김혜윤 기자
―설 연휴다. 기억에 남는 설음식이 있나?
후덕죽(이하 후) 물만두를 제사상에 올린다. 만두는 의미가 있다. 황금성릴게임사이트 밀가루로 피를 만들어서 그 안에 온갖 재료를 넣어 만드는 음식이다. 식구들의 화합, 건강, 재물 등이 들어온다는 뜻이 담겼다. 집안에 좋은 일 있을 때나 생일에도 만두를 만들어 먹는다.
천상현(이하 천) 우리나라는 명절에 떡만둣국을 해 먹는다. 청와대에선 1월1일 대통령님 드시는 음식으로 만둣국이나 떡만둣국, 떡국, 반찬 5개, 간단한 불고기 하나, 전 정도 준비한다. 대통령님은 국무위원들과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한 후 국무위원들과 떡만둣국을 드시면서 한해 국정 운영을 계획한다. 설도 비슷하다.
―어릴 때 추억이 듬뿍 담긴 설음식이 있나? 음식은 기억이라고 했다.
후 찹쌀로 빚은 떡이다. 찹쌀을 찜통에 찌고 여러가지 설탕을 뿌린 음식이다. 찹쌀밥 비슷하고 떡밥 비슷한 거다. 어릴 때 단거 좋아하니깐, 기억에 남는다.
천 설 하면 일단 어머님이 해준 전과 잡채가 생각난다. 세뱃돈 받는 재미가 컸다. 그날은 과식한다.(웃음) 어머님이 음식을 잘하셨다. 잡채나 불고기, 생선조림 등 풍성하게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설 밥상을 차린다면? 가장 중요하게 담아야 할 것은?
후 전가복이란 요리가 있다. 집안 전체에 복이 온다는 의미가 담겼다. 10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해산물부터 각종 채소, 버섯 등이다. 설에 다 모여 이 음식을 먹으면 식구들에게 다 복이 온다. 신선로도 있다. 용기에 여러가지 음식을 넣어 끓여 건져 먹는 것인데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선 이 음식을 한다.
천 가족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가족 중 누구라도 아프면 좋지 않다. 전가복은 여러가지 음식을 섞어 먹는 거라 가족의 화합과 건강을 도모하는 음식이다.
두 사람의 생각이 ‘전가복’에 모였다. 천 셰프를 청와대 요리사로 추천한 이가 후 셰프다. 무림 같은 중식계에서 초식 몇개 겨우 부릴 줄 아는 천 셰프를 왜 추천했을까. “김대중 대통령님이 중식을 좋아하셨다. ‘신라호텔 중식이 제일 맛있으니 조리사 한명 보내라’는 연락을 받았다. 화교는 국적 문제 때문에 안 되고, (한국인인) 천 셰프는 젊은데 침착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해 평소에도 마음에 들었다.” 후 셰프의 말을 천 셰프가 이었다. “그 시절 요리 잘하는 화교분이 많았다. 신라호텔 같은 5성급 호텔 중식당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은 극소수였다.”
―팔선에서 함께 일할 때 얘기를 해달라.
후 천 셰프는 요리사로서 자세가 돼 있었다. 요리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있고 책임감이 앞섰다. 차분하고 만사가 신중했다.
천 후 사부님은 무섭게는 안 하셨는데, 저 스스로 너무 어려웠다. 호텔 사장님은 오든지 말든지 안중에 없었는데, 후 사부님이 업장 한번 돌면 괜히 피했다. 직원들에겐 무서운 존재였다. 사실 우리가 갓 들어와서 무서워했던 거다. 사부님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분이었다. 어떤 책임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거에 큰소리쳤는데 절대 그러지 않으셨다. 혼을 내더라도 직원이 납득할 수 있게 얘기하셨다. 꼭 이유가 있었다. 본인이 납득이 되니까, 불만도 없었다. 부드러우면서 예리하셨다. 그런 지적이 3년, 5년, 10년이 지나면 다 자기 것이 됐다. 책임자가 대충 하면 제대로 못 배운다.
후덕죽 셰프와 천상현 셰프 모두 추억이 있는 중식 ‘불도장’. 앰배서더 서울 풀만호텔 제공
천 셰프는 후 셰프를 향해 “30년 전 일인데 기억나세요?” 웃으며 묻는다. 후 셰프는 특유의 미소로 답한다. 이들의 추억이 이어졌다. “타피오카를 제일 먼저 쓴 데가 팔선이다. 이를 두고 주방 사람이 홀 직원에게 장난처럼 ‘개구리 알’이라고 말한 걸 손님이 전해 듣고 난리 났었다.” 후 셰프가 웃었다.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하고 팔선에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 돼서 청와대로 간 천 셰프의 청와대 생활은 후 셰프의 든든한 후원과 뒷받침이 있어서 가능했다. “급할 때 연락드리고 여쭸다. 대통령님이 순방 가시면 우리는 쉰다. 후 사부님께 와서 며칠이나 배웠다. 몇년이나 그랬다.” 1987년 불도장 개발 얘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호텔 영업도 잘 안돼서 불도장을 개발했는데, ‘향이 너무 좋아 수행 스님도 담을 넘어 먹는다’고 홍보했다. 스님들이 ‘우리가 먹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하냐’며 매일 찾아오고 항의 전화 했다. 스님들께 찾아가서 사과하고 홍보 안 하기로 하면서 괜찮아졌다.” 후 셰프의 얘기에 천 셰프도 말했다. “사부님께 배운 불도장이다. 권양숙 여사님이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입원하셨을 때 불도장을 만들라 했다. 병문안 가실 때 가져가셨다. 좋아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기뻤다.”
후덕죽 세프를 사부로 모시는 천상현 셰프. 김혜윤 기자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 출연한 후덕죽 셰프의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 출연한 천상현 셰프의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흑백요리사에서 만났을 때 얘기가 궁금하다.
후 처음 제작진 연락에 거절을 많이 했다. 젊은 후배들에게 용기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수락했다. ‘(나이 들었지만) 나도 요리할 수 있다는 거 후배들에게 보여주자’ 했다. 천 셰프 만나고 흐뭇했다. 어릴 때 본 제자가 계속 성장한 거니까. 이산가족 만난 거 같았다. ‘출연하길 잘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잘 키웠고, 잘 컸구나, 그런 생각 들면서 기분이 좋았다.
천 깜짝 놀랐다. (내가) 경연에 떨어지겠구나, 그런 생각보다는 너무 흐뭇했다. 사부와 제자 모두 백수저로 같은 방 쓰는 게 뿌듯했다.
―요리사가 갖춰야 할 덕목은?
후 인성이 제일 중요하다. 사람을 우선하는 이가 돼야 한다. 인성이 안 되면 기술을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
천 늘 그런 말씀 하셨다. “인성이 되지 않은 요리사는 나중에 요리를 잘해 빨리 올라갈지 몰라도 결국 조직은 순항할 수가 없다. 난파선처럼 흔들린다”고 말씀하셨다.
청년들에게 바라는 바를 얘기하고 있는 후덕죽 셰프. 김혜윤 기자
―한국 중식은 독자적인 요리 세계를 구축했다.
후 음식은 지역과 입맛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다.(후 셰프는 서울 중구가 고향이고, 2006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취득 당시 왕십리에 거주해 ‘왕십리 후씨’가 됐다.) 한국인과 같은 체질이다. 다른 나라 다녀보면 ‘이건 국내 도입해도 되겠다’ 싶은 게 있다. 다 기록했다.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변주했다.
천 본토 가면 중식 못 먹는다. 너무 짜고 맵다. 우리 중식은 한국화된 중식이다. 그 기틀을 후 사부님이 다졌다. 사부님은 광둥식을 기반으로 한 한국 스타일 중식을 만드셨고, 그렇게 하시려고 노력하셨다. 예를 들면 짜장면엔 춘장을 넣는데, 30년 전 신라호텔에선 된장을 썼다. 한국 식재료를 쓰시고 한국인 입맛에 맞게 하셨다.
―후 셰프가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후 원재료 맛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튀기거나 볶는 거 많이 안 한다. 좋은 원재료를 찐다. 원물이 그대로 살아 있고 맛이 그대로 유지된다. 완성된 거에 맞는 소스를 뿌린다. 인공조미료 안 쓴다. 본연의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게 내 요리의 기본 원칙이다.
―과거 중식 요리사는 찬밥이었다. 서양요리 셰프보다 대접을 못 받았다. 이젠 요리사의 사회적 지위나 인식이 많이 올라갔다.
후 요샌 방송에 요리사가 많이 나오지만, 옛날에 아니었다. 1999년 문화방송(MBC) ‘성공시대’에 나간 게 기억난다. 대기업 회장님 나오는 프로였는데, 요청이 와서 했다. 결혼 얘기도 담더라. 조리사라고 하니 장모님 반대가 심했다. “남자가 그렇게 할 게 없냐”고 하셨다.(웃음)
천 아이엠에프(IMF) 금융 위기 사태 이후 바뀐 것 같다. 그 전에 결혼할 때 장인·장모님이 몇가지 이유로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장남, 성이 천씨, 전라도 사람, 요리사라서 싫다고 하셨다. 아이엠에프를 겪으면서 화이트칼라는 저무는데 블루칼라 기술직은 안 잘렸으니 좋아하셨다. 요리는 기술이다. 이제 신랑감 1위다.(웃음)
후 셰프는 19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6년간 연애하고 25살에 결혼하려고 하자 처가의 반대가 심했다. 결국 하객 한명 없이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 비가 엄청 쏟아졌다. 우리 둘의 눈물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날 비 많이 오면 잘 산다고 하더라. 지금 이렇게 잘 산다. 장모님이 칭찬 많이 해주시고 ‘고맙다’고 하신다.(웃음) 그만큼 (결혼 뒤) 내가 잘했다.” 천 셰프도 “장모님이 제 자랑 많이 하시고 친구분들 밥도 많이 사신다”며 웃었다.
요리사의 사회적 책무. 요리사가 갖춰야할 덕목 등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있는 후덕죽 셰프(왼쪽)과 천상현 셰프. 김혜윤 기자
―유명인이 됐다. 사회적 책무가 따를 수밖에 없다.
후 많은 이들이 “나이가 많은데 아직 현장에 있네” 한다. 건강이 좋다.(웃음) 젊은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에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거다. 요리를 좋아하고, 할수록 재밌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새 요리 만들 거다. 이런 기술을 한 사람이라도 더 가르쳐주려 한다. 더 많은 제자와 직원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는 게 내 소원이다.
천 계속 고민하며 할 수 있는 걸 찾을 거다.
―지금 청년들에게 조언해준다면?
후 요즘 청년들은 2~3년 하면 뭔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급하다. 건물을 짓더라도 기둥이 든든해야 한다. 그래야 건물이 제대로 올라간다. 기둥이 든든하지 않으면 건물이 올라가도 쓰러진다. 든든한 기둥을 세우는 데 젊은 친구들의 끈기나 열정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아쉽다. 한편, 청년마다 상황이 다르니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해주고 싶다. 이 직업을 하고 싶은 이들에겐 특히 그렇다.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 자기 능력을 키웠으면 한다. 급하게 뛰어올라갔다간 또 떨어질 수가 있다.
천 사부님의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배웠다. 팔선 입사 초기에 ‘저분이 나의 롤 모델’이라고 생각한 이유다. 요리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선 인성이 기본 조건이다. 외식 시장은 힘들다. 젊은 친구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갔으면 한다. 한 10년 내공을 쌓고, 하고 싶은 거, 중식이든 양식이든 열정을 가지고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조금만 손해 본다는 느낌으로 살았으면 한다. 동료 관계에서나 조직 생활에서 말이다. ‘내가 발품 좀 더 팔아서 하지’ 그러면 좋겠다. 사회생활 하는 데 나쁘지 않을 거다.
자신의 요리 원칙을 얘기하고 있는 후덕죽 셰프(왼쪽)와 경청하는 천상현 셰프. 김혜윤 기자
19살의 나이 차이에도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후덕죽 셰프(왼쪽)와 천상현 셰프. 김혜윤 기자
흑백요리사 출연 뒤 두 사람의 일상은 180도 달라졌다. “예전엔 힘들다면서 그만두는 사람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만두질 않는다.”(웃음) 후 셰프의 말이다. 거의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섭외 요청을 받은 뒤 후 셰프는 ‘유 퀴즈 온 더 블럭’(tvN)과 ‘손석희의 질문들’(MBC, 오는 18일 방송 예정)만 선택했다. 일간지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지만 한겨레를 포함해 두곳만 수락했다. 국내 주요 식품회사 광고 섭외로 전화기에 불이 난다. 그는 “거절을 많이 하고 있다. 그거 다 하려면 너무 힘들다.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천 셰프의 ‘천상현의 천상 영암멋집’은 전남 영암에 있는데,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 금세 예약이 마감된다. 영암은 그의 고향이다.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웃음) 천 셰프는 경기 가평과 서울에도 매장이 있다. 영암 매장을 연 이유는 4년 전 발병한 폐암 때문이다. 공기 맑은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단다. 폐암은 현재 표적 치료 중이다.
중식 대가 후 셰프가 가는 중식당은 어디일까? “그냥 동네 중국집 간다”고 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자는 규칙이 건강관리법이란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요즘 그에겐 습관 하나가 생겼다. 천 셰프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이런 방송에서 연락 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둘의 우정은 흑백요리사로 더 쫄깃하고 달곰해졌다.
글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사진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중식 프라이팬 웍의 무게는 최소 1.5㎏이다. 뜨거운 불판에서 묵직한 웍을 손목이 나갈 정도로 돌리는 중식 요리사는 한때 존중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음식은 국민 대다수의 추억과 직결된 ‘솔푸드’였다. 졸업식, 입학식 때마다 먹은 음식이 짜장면이다. 중국에는 없는 짜장면. 한국 중식은 야마토게임연타 중식의 출발지 중국이나 대만과 달리 독자적인 위상을 정립해왔다. 단언컨대 한국 중식은 이제 한식 범주에 있다. 본래 음식은 먹는 이의 감성과 취향이 정체성을 결정한다.
한국 식문화가 다채롭게 발전하면서 중식 요리사는 이제 주목받는 직업이 됐다. 그 중심에 후덕죽(77) 앰배서더 서울 풀만호텔 ‘호빈’ 셰프와 천상현(58) ‘천상현의 천상’ 백경게임 대표가 있다. 후 셰프는 42년간 신라호텔 ‘팔선’을 이끈 이로, 요리 경력만 58년인 고수이자 한국 중식의 대명사다. 천 셰프는 팔선에서 경력을 쌓은 뒤 1998년 청와대에 들어가 20년간 대통령 5명의 밥상을 차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다. 이 둘은 팔선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둘의 나이 차이는 19년. 거의 강산이 두번 바 릴게임무료 뀌는 시간이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이하 흑백요리사)에서 이들은 단박에 그 시간의 간극을 메우고 요리의 진수를 보여줬다. 상대를 꺾어야 할 대결의 장에서 이들이 보여준 서로를 향한 존경은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다. 각자도생, 경쟁에서의 승리만이 난무하는 지금, 이 둘의 우정은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둘의 우정을 설 연휴를 앞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둔 지난 10일 목격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후덕죽 셰프. 김혜윤 기자
―설 연휴다. 기억에 남는 설음식이 있나?
후덕죽(이하 후) 물만두를 제사상에 올린다. 만두는 의미가 있다. 황금성릴게임사이트 밀가루로 피를 만들어서 그 안에 온갖 재료를 넣어 만드는 음식이다. 식구들의 화합, 건강, 재물 등이 들어온다는 뜻이 담겼다. 집안에 좋은 일 있을 때나 생일에도 만두를 만들어 먹는다.
천상현(이하 천) 우리나라는 명절에 떡만둣국을 해 먹는다. 청와대에선 1월1일 대통령님 드시는 음식으로 만둣국이나 떡만둣국, 떡국, 반찬 5개, 간단한 불고기 하나, 전 정도 준비한다. 대통령님은 국무위원들과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한 후 국무위원들과 떡만둣국을 드시면서 한해 국정 운영을 계획한다. 설도 비슷하다.
―어릴 때 추억이 듬뿍 담긴 설음식이 있나? 음식은 기억이라고 했다.
후 찹쌀로 빚은 떡이다. 찹쌀을 찜통에 찌고 여러가지 설탕을 뿌린 음식이다. 찹쌀밥 비슷하고 떡밥 비슷한 거다. 어릴 때 단거 좋아하니깐, 기억에 남는다.
천 설 하면 일단 어머님이 해준 전과 잡채가 생각난다. 세뱃돈 받는 재미가 컸다. 그날은 과식한다.(웃음) 어머님이 음식을 잘하셨다. 잡채나 불고기, 생선조림 등 풍성하게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설 밥상을 차린다면? 가장 중요하게 담아야 할 것은?
후 전가복이란 요리가 있다. 집안 전체에 복이 온다는 의미가 담겼다. 10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해산물부터 각종 채소, 버섯 등이다. 설에 다 모여 이 음식을 먹으면 식구들에게 다 복이 온다. 신선로도 있다. 용기에 여러가지 음식을 넣어 끓여 건져 먹는 것인데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선 이 음식을 한다.
천 가족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가족 중 누구라도 아프면 좋지 않다. 전가복은 여러가지 음식을 섞어 먹는 거라 가족의 화합과 건강을 도모하는 음식이다.
두 사람의 생각이 ‘전가복’에 모였다. 천 셰프를 청와대 요리사로 추천한 이가 후 셰프다. 무림 같은 중식계에서 초식 몇개 겨우 부릴 줄 아는 천 셰프를 왜 추천했을까. “김대중 대통령님이 중식을 좋아하셨다. ‘신라호텔 중식이 제일 맛있으니 조리사 한명 보내라’는 연락을 받았다. 화교는 국적 문제 때문에 안 되고, (한국인인) 천 셰프는 젊은데 침착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해 평소에도 마음에 들었다.” 후 셰프의 말을 천 셰프가 이었다. “그 시절 요리 잘하는 화교분이 많았다. 신라호텔 같은 5성급 호텔 중식당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은 극소수였다.”
―팔선에서 함께 일할 때 얘기를 해달라.
후 천 셰프는 요리사로서 자세가 돼 있었다. 요리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있고 책임감이 앞섰다. 차분하고 만사가 신중했다.
천 후 사부님은 무섭게는 안 하셨는데, 저 스스로 너무 어려웠다. 호텔 사장님은 오든지 말든지 안중에 없었는데, 후 사부님이 업장 한번 돌면 괜히 피했다. 직원들에겐 무서운 존재였다. 사실 우리가 갓 들어와서 무서워했던 거다. 사부님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분이었다. 어떤 책임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거에 큰소리쳤는데 절대 그러지 않으셨다. 혼을 내더라도 직원이 납득할 수 있게 얘기하셨다. 꼭 이유가 있었다. 본인이 납득이 되니까, 불만도 없었다. 부드러우면서 예리하셨다. 그런 지적이 3년, 5년, 10년이 지나면 다 자기 것이 됐다. 책임자가 대충 하면 제대로 못 배운다.
후덕죽 셰프와 천상현 셰프 모두 추억이 있는 중식 ‘불도장’. 앰배서더 서울 풀만호텔 제공
천 셰프는 후 셰프를 향해 “30년 전 일인데 기억나세요?” 웃으며 묻는다. 후 셰프는 특유의 미소로 답한다. 이들의 추억이 이어졌다. “타피오카를 제일 먼저 쓴 데가 팔선이다. 이를 두고 주방 사람이 홀 직원에게 장난처럼 ‘개구리 알’이라고 말한 걸 손님이 전해 듣고 난리 났었다.” 후 셰프가 웃었다.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하고 팔선에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 돼서 청와대로 간 천 셰프의 청와대 생활은 후 셰프의 든든한 후원과 뒷받침이 있어서 가능했다. “급할 때 연락드리고 여쭸다. 대통령님이 순방 가시면 우리는 쉰다. 후 사부님께 와서 며칠이나 배웠다. 몇년이나 그랬다.” 1987년 불도장 개발 얘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호텔 영업도 잘 안돼서 불도장을 개발했는데, ‘향이 너무 좋아 수행 스님도 담을 넘어 먹는다’고 홍보했다. 스님들이 ‘우리가 먹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하냐’며 매일 찾아오고 항의 전화 했다. 스님들께 찾아가서 사과하고 홍보 안 하기로 하면서 괜찮아졌다.” 후 셰프의 얘기에 천 셰프도 말했다. “사부님께 배운 불도장이다. 권양숙 여사님이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입원하셨을 때 불도장을 만들라 했다. 병문안 가실 때 가져가셨다. 좋아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기뻤다.”
후덕죽 세프를 사부로 모시는 천상현 셰프. 김혜윤 기자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 출연한 후덕죽 셰프의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 출연한 천상현 셰프의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흑백요리사에서 만났을 때 얘기가 궁금하다.
후 처음 제작진 연락에 거절을 많이 했다. 젊은 후배들에게 용기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수락했다. ‘(나이 들었지만) 나도 요리할 수 있다는 거 후배들에게 보여주자’ 했다. 천 셰프 만나고 흐뭇했다. 어릴 때 본 제자가 계속 성장한 거니까. 이산가족 만난 거 같았다. ‘출연하길 잘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잘 키웠고, 잘 컸구나, 그런 생각 들면서 기분이 좋았다.
천 깜짝 놀랐다. (내가) 경연에 떨어지겠구나, 그런 생각보다는 너무 흐뭇했다. 사부와 제자 모두 백수저로 같은 방 쓰는 게 뿌듯했다.
―요리사가 갖춰야 할 덕목은?
후 인성이 제일 중요하다. 사람을 우선하는 이가 돼야 한다. 인성이 안 되면 기술을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
천 늘 그런 말씀 하셨다. “인성이 되지 않은 요리사는 나중에 요리를 잘해 빨리 올라갈지 몰라도 결국 조직은 순항할 수가 없다. 난파선처럼 흔들린다”고 말씀하셨다.
청년들에게 바라는 바를 얘기하고 있는 후덕죽 셰프. 김혜윤 기자
―한국 중식은 독자적인 요리 세계를 구축했다.
후 음식은 지역과 입맛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다.(후 셰프는 서울 중구가 고향이고, 2006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취득 당시 왕십리에 거주해 ‘왕십리 후씨’가 됐다.) 한국인과 같은 체질이다. 다른 나라 다녀보면 ‘이건 국내 도입해도 되겠다’ 싶은 게 있다. 다 기록했다.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변주했다.
천 본토 가면 중식 못 먹는다. 너무 짜고 맵다. 우리 중식은 한국화된 중식이다. 그 기틀을 후 사부님이 다졌다. 사부님은 광둥식을 기반으로 한 한국 스타일 중식을 만드셨고, 그렇게 하시려고 노력하셨다. 예를 들면 짜장면엔 춘장을 넣는데, 30년 전 신라호텔에선 된장을 썼다. 한국 식재료를 쓰시고 한국인 입맛에 맞게 하셨다.
―후 셰프가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후 원재료 맛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튀기거나 볶는 거 많이 안 한다. 좋은 원재료를 찐다. 원물이 그대로 살아 있고 맛이 그대로 유지된다. 완성된 거에 맞는 소스를 뿌린다. 인공조미료 안 쓴다. 본연의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게 내 요리의 기본 원칙이다.
―과거 중식 요리사는 찬밥이었다. 서양요리 셰프보다 대접을 못 받았다. 이젠 요리사의 사회적 지위나 인식이 많이 올라갔다.
후 요샌 방송에 요리사가 많이 나오지만, 옛날에 아니었다. 1999년 문화방송(MBC) ‘성공시대’에 나간 게 기억난다. 대기업 회장님 나오는 프로였는데, 요청이 와서 했다. 결혼 얘기도 담더라. 조리사라고 하니 장모님 반대가 심했다. “남자가 그렇게 할 게 없냐”고 하셨다.(웃음)
천 아이엠에프(IMF) 금융 위기 사태 이후 바뀐 것 같다. 그 전에 결혼할 때 장인·장모님이 몇가지 이유로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장남, 성이 천씨, 전라도 사람, 요리사라서 싫다고 하셨다. 아이엠에프를 겪으면서 화이트칼라는 저무는데 블루칼라 기술직은 안 잘렸으니 좋아하셨다. 요리는 기술이다. 이제 신랑감 1위다.(웃음)
후 셰프는 19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6년간 연애하고 25살에 결혼하려고 하자 처가의 반대가 심했다. 결국 하객 한명 없이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 비가 엄청 쏟아졌다. 우리 둘의 눈물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날 비 많이 오면 잘 산다고 하더라. 지금 이렇게 잘 산다. 장모님이 칭찬 많이 해주시고 ‘고맙다’고 하신다.(웃음) 그만큼 (결혼 뒤) 내가 잘했다.” 천 셰프도 “장모님이 제 자랑 많이 하시고 친구분들 밥도 많이 사신다”며 웃었다.
요리사의 사회적 책무. 요리사가 갖춰야할 덕목 등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있는 후덕죽 셰프(왼쪽)과 천상현 셰프. 김혜윤 기자
―유명인이 됐다. 사회적 책무가 따를 수밖에 없다.
후 많은 이들이 “나이가 많은데 아직 현장에 있네” 한다. 건강이 좋다.(웃음) 젊은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에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거다. 요리를 좋아하고, 할수록 재밌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새 요리 만들 거다. 이런 기술을 한 사람이라도 더 가르쳐주려 한다. 더 많은 제자와 직원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는 게 내 소원이다.
천 계속 고민하며 할 수 있는 걸 찾을 거다.
―지금 청년들에게 조언해준다면?
후 요즘 청년들은 2~3년 하면 뭔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급하다. 건물을 짓더라도 기둥이 든든해야 한다. 그래야 건물이 제대로 올라간다. 기둥이 든든하지 않으면 건물이 올라가도 쓰러진다. 든든한 기둥을 세우는 데 젊은 친구들의 끈기나 열정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아쉽다. 한편, 청년마다 상황이 다르니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해주고 싶다. 이 직업을 하고 싶은 이들에겐 특히 그렇다.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 자기 능력을 키웠으면 한다. 급하게 뛰어올라갔다간 또 떨어질 수가 있다.
천 사부님의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배웠다. 팔선 입사 초기에 ‘저분이 나의 롤 모델’이라고 생각한 이유다. 요리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선 인성이 기본 조건이다. 외식 시장은 힘들다. 젊은 친구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갔으면 한다. 한 10년 내공을 쌓고, 하고 싶은 거, 중식이든 양식이든 열정을 가지고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조금만 손해 본다는 느낌으로 살았으면 한다. 동료 관계에서나 조직 생활에서 말이다. ‘내가 발품 좀 더 팔아서 하지’ 그러면 좋겠다. 사회생활 하는 데 나쁘지 않을 거다.
자신의 요리 원칙을 얘기하고 있는 후덕죽 셰프(왼쪽)와 경청하는 천상현 셰프. 김혜윤 기자
19살의 나이 차이에도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후덕죽 셰프(왼쪽)와 천상현 셰프. 김혜윤 기자
흑백요리사 출연 뒤 두 사람의 일상은 180도 달라졌다. “예전엔 힘들다면서 그만두는 사람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만두질 않는다.”(웃음) 후 셰프의 말이다. 거의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섭외 요청을 받은 뒤 후 셰프는 ‘유 퀴즈 온 더 블럭’(tvN)과 ‘손석희의 질문들’(MBC, 오는 18일 방송 예정)만 선택했다. 일간지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지만 한겨레를 포함해 두곳만 수락했다. 국내 주요 식품회사 광고 섭외로 전화기에 불이 난다. 그는 “거절을 많이 하고 있다. 그거 다 하려면 너무 힘들다.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천 셰프의 ‘천상현의 천상 영암멋집’은 전남 영암에 있는데,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 금세 예약이 마감된다. 영암은 그의 고향이다.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웃음) 천 셰프는 경기 가평과 서울에도 매장이 있다. 영암 매장을 연 이유는 4년 전 발병한 폐암 때문이다. 공기 맑은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단다. 폐암은 현재 표적 치료 중이다.
중식 대가 후 셰프가 가는 중식당은 어디일까? “그냥 동네 중국집 간다”고 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자는 규칙이 건강관리법이란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요즘 그에겐 습관 하나가 생겼다. 천 셰프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이런 방송에서 연락 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둘의 우정은 흑백요리사로 더 쫄깃하고 달곰해졌다.
글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사진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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