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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수여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2-15 07:42조회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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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코리
장례 현장에서 일하며 배운 점을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매번 죽음의 단상들을 마주하며 유독 크게 느끼는 점이 있다.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은 참 느닷없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토록 실감 나지 않은 죽음을 절절하게 만나는 것이 장례지도사이기도 하다.
노환 또는 지병으로 인하여 예고된 죽음을 맞는 고인 분들도 많지만, 몸서리가 날 만큼 갑작스러운 죽음도 많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다 보니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도 만나게 된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룬 형태가 아닌 동성끼리 오징어릴게임 의 만남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솔직히 혼란스럽기도 하다. 유가족 분들은 나를 믿고 집안의 큰일인 장례를 진행 중이신데,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유일한 애도자를 남기고
굉장히 어려 보이는 남학생 한 명이 장례식장 상담실에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있었 바다이야기프로그램 다. 상담 하게 될 유가족의 아드님만 먼저 오셨나 했더니 고인의 유일한 지인이었다. 법적인 가족이 아니라 친구 관계여서 고인의 직계 가족과 연락이 닿을 수 없냐고 물으니 힘없이 고개만 저었다. 처음 본 청년이지만 어린 나이에 맞닥뜨린 친한 친구의 죽음과, 장례식장이라는 차가운 공간이 얼마나 무서울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도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릴게임황금성 그와 고인은 동성이지만 사랑하는 사이였고, 그 이유로 인하여 각자의 가족에게 외면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하는 청년들의 사망률이 20대에 많은 이유는 의외로 질병 때문이 아니다. 가족들과의 단절과 외로움으로 인한 자살이 다수이다. 슬픔의 늪에 깊이 빠져있는 저 청년에게 무슨 말 부터 꺼내야 할지 머리가 막막해져,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것 보다 백경게임 어려웠다.
정처 없이 책 사이를 찾아 해매기도 하고, 선배들에게 조언도 구해본다. 하지만 어차피 정해진 답은 없다. 유가족은 이미 이별의 슬픔에 휩싸여 경황이 없으시고, 그때 내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의 사례가 아닌 내 눈앞에 있는 가족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청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장례 릴박스 지도사가 듣는 장례식으로
내가 가족상을 당하였을 때, 우리 가족들은 무언가 장례식장 측에 요구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잘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왜 요청을 하지 않느냐고 내가 묻자 “에이, 우리 아버님 시신 모시는 분인데 괜히 기분 상하게 해 드릴까 봐 조심스럽네.”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혹여나 내가 모신 유가족 분들도 나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진 않았을까. 혹여나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도 그냥 참거나 마음 속 주머니에 다시 넣어 두진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으로 말이다.
미래의 장례문화는 ‘말하는 장례가 아닌 듣는 장례’로의 변화라 한다. 지금의 장례문화는 어찌 보면 기존 방식대로 또는 남이 행하는 모습에 따라 진행되지만, 차츰 기존 방식을 탈피하여 유가족이 원하는 대로 더 나아가서는 고인이 생전에 미리 원했던 방식대로 연출하는 장례로 진화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빠른 시일 내에 변화가 가속될 순 없지만, 적어도 장례 문화가 나아갈 방향만 확실하다면 그것은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신입 시절에 한 선배는 ‘장례는 인간이 인간에게 지키는 마지막 예의다.’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그 예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예법으로 고인의 마지막을 기리는 마음을 통해 신이 모든 인간을 사랑 하듯 모든 고인도 예외가 없이 아름답고 평안하셨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겐 허락되지 않는 제단 위 영정사진
젊은 청년의 주검은 결국 장례식을 거칠 수 없었다. 무연고자라면 친구 등 지인이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를 수 있지만 청년은 분명히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은 그의 존재를 오래 전에 지운 것처럼 장례는커녕 안치 냉장시설에 있는 청년의 시신조차 인수를 거부하였다. 홀로 남은 또 다른 청년이 관공서를 방문하여 이러한 상황을 직접 설명하고 필요 서류를 구비하여 의례를 진행할 여력도 기력도 없을 것이 뻔하다. 죽어서 나의 영정 사진이 제단 위에 올려지는 것도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아니었던 것이다.
죽음 앞에 모든 인간들은 공평하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은 아무 빛을 발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희망을 나누는 것이 남길 수 있는 유산이다. 고인이 정형화된 가정 안에서 사랑을 나누지 않았더라도, 그는 자신의 방식 안에서 최선을 다 한 것이다. 고인이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장의사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맡은 바 고인을 정성껏 모셔드리는 것이 전부다. 인생을 살아내며 고단했을 몸을 씻겨드리고 아름답게 단장해드린다. 그리고 고인의 가족들 지인 분들과의 마지막 인사 자리를 만들어 드린다. 죽음은 언제나 익숙해질 수 없고, 슬프지 않은 이별이 없다. 그저 장례식에서 만큼은 근심 걱정 내려놓고 평안하시기만을 소망할 뿐이다.
부디 그 청년이 세상의 결박에서 풀려났기를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편견의 굴레 속에서 고민했을까.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굽은 길을 걸었을까. 살아가며 온갖 결밖에 묶이기도 한다. 수고의 결박, 질병의 결박, 사고의 결박 등 다 나열할 수 없는 결박에 묶여 살아간다. 그러나 나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많은 분들이 이런 밧줄을 벗어 버리고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디모데전서 6:7)
유가족들을 대하며 때론 나 자신이 장례지도사가 아닌 나의 미소와 손길 자체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객의 요구사항 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바람과 아픔을 이해하며 그들과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참된 소리가 들린다. 감동은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 황망한 죽음 앞에서 장례를 지도하는 사람이 아닌 고객의 마음을 따사로이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별돌보미 양수진의 애도와 애정 사이는
‘이 별에서의 이별’ 저자 양수진은 장례지도사이지만 이별의 의식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과 유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별도우미로 일했던 지난 15년 동안, 그녀는 엄마가 되었고 또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도 되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가끔은 숨을 돌리며 삶에 대한 애정과 애도 사이에서 서성였던 이야기들을 낮은 목소리로 소개합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애도와 애정 사이(https://www.hani.co.kr/arti/SERIES/3306?h=s)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장례식장 위층에 사는 노인들이 행복한 이유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234766.html?h=s
▶장례지도사의 ‘후회 없는 장례식’ 조언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224485.html?h=s
▶셋 중 하나가 혼자인 세상-혼자 죽는 게 어때서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229780.html?h=s
▶유아 주검엔 삼베 수의를 입히지 않는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211603.html?h=s
양수진
장례 현장에서 일하며 배운 점을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매번 죽음의 단상들을 마주하며 유독 크게 느끼는 점이 있다.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은 참 느닷없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토록 실감 나지 않은 죽음을 절절하게 만나는 것이 장례지도사이기도 하다.
노환 또는 지병으로 인하여 예고된 죽음을 맞는 고인 분들도 많지만, 몸서리가 날 만큼 갑작스러운 죽음도 많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다 보니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도 만나게 된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룬 형태가 아닌 동성끼리 오징어릴게임 의 만남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솔직히 혼란스럽기도 하다. 유가족 분들은 나를 믿고 집안의 큰일인 장례를 진행 중이신데,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유일한 애도자를 남기고
굉장히 어려 보이는 남학생 한 명이 장례식장 상담실에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있었 바다이야기프로그램 다. 상담 하게 될 유가족의 아드님만 먼저 오셨나 했더니 고인의 유일한 지인이었다. 법적인 가족이 아니라 친구 관계여서 고인의 직계 가족과 연락이 닿을 수 없냐고 물으니 힘없이 고개만 저었다. 처음 본 청년이지만 어린 나이에 맞닥뜨린 친한 친구의 죽음과, 장례식장이라는 차가운 공간이 얼마나 무서울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도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릴게임황금성 그와 고인은 동성이지만 사랑하는 사이였고, 그 이유로 인하여 각자의 가족에게 외면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하는 청년들의 사망률이 20대에 많은 이유는 의외로 질병 때문이 아니다. 가족들과의 단절과 외로움으로 인한 자살이 다수이다. 슬픔의 늪에 깊이 빠져있는 저 청년에게 무슨 말 부터 꺼내야 할지 머리가 막막해져,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것 보다 백경게임 어려웠다.
정처 없이 책 사이를 찾아 해매기도 하고, 선배들에게 조언도 구해본다. 하지만 어차피 정해진 답은 없다. 유가족은 이미 이별의 슬픔에 휩싸여 경황이 없으시고, 그때 내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의 사례가 아닌 내 눈앞에 있는 가족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청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장례 릴박스 지도사가 듣는 장례식으로
내가 가족상을 당하였을 때, 우리 가족들은 무언가 장례식장 측에 요구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잘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왜 요청을 하지 않느냐고 내가 묻자 “에이, 우리 아버님 시신 모시는 분인데 괜히 기분 상하게 해 드릴까 봐 조심스럽네.”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혹여나 내가 모신 유가족 분들도 나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진 않았을까. 혹여나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도 그냥 참거나 마음 속 주머니에 다시 넣어 두진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으로 말이다.
미래의 장례문화는 ‘말하는 장례가 아닌 듣는 장례’로의 변화라 한다. 지금의 장례문화는 어찌 보면 기존 방식대로 또는 남이 행하는 모습에 따라 진행되지만, 차츰 기존 방식을 탈피하여 유가족이 원하는 대로 더 나아가서는 고인이 생전에 미리 원했던 방식대로 연출하는 장례로 진화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빠른 시일 내에 변화가 가속될 순 없지만, 적어도 장례 문화가 나아갈 방향만 확실하다면 그것은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신입 시절에 한 선배는 ‘장례는 인간이 인간에게 지키는 마지막 예의다.’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그 예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예법으로 고인의 마지막을 기리는 마음을 통해 신이 모든 인간을 사랑 하듯 모든 고인도 예외가 없이 아름답고 평안하셨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겐 허락되지 않는 제단 위 영정사진
젊은 청년의 주검은 결국 장례식을 거칠 수 없었다. 무연고자라면 친구 등 지인이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를 수 있지만 청년은 분명히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은 그의 존재를 오래 전에 지운 것처럼 장례는커녕 안치 냉장시설에 있는 청년의 시신조차 인수를 거부하였다. 홀로 남은 또 다른 청년이 관공서를 방문하여 이러한 상황을 직접 설명하고 필요 서류를 구비하여 의례를 진행할 여력도 기력도 없을 것이 뻔하다. 죽어서 나의 영정 사진이 제단 위에 올려지는 것도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아니었던 것이다.
죽음 앞에 모든 인간들은 공평하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은 아무 빛을 발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희망을 나누는 것이 남길 수 있는 유산이다. 고인이 정형화된 가정 안에서 사랑을 나누지 않았더라도, 그는 자신의 방식 안에서 최선을 다 한 것이다. 고인이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장의사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맡은 바 고인을 정성껏 모셔드리는 것이 전부다. 인생을 살아내며 고단했을 몸을 씻겨드리고 아름답게 단장해드린다. 그리고 고인의 가족들 지인 분들과의 마지막 인사 자리를 만들어 드린다. 죽음은 언제나 익숙해질 수 없고, 슬프지 않은 이별이 없다. 그저 장례식에서 만큼은 근심 걱정 내려놓고 평안하시기만을 소망할 뿐이다.
부디 그 청년이 세상의 결박에서 풀려났기를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편견의 굴레 속에서 고민했을까.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굽은 길을 걸었을까. 살아가며 온갖 결밖에 묶이기도 한다. 수고의 결박, 질병의 결박, 사고의 결박 등 다 나열할 수 없는 결박에 묶여 살아간다. 그러나 나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많은 분들이 이런 밧줄을 벗어 버리고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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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돌보미 양수진의 애도와 애정 사이는
‘이 별에서의 이별’ 저자 양수진은 장례지도사이지만 이별의 의식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과 유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별도우미로 일했던 지난 15년 동안, 그녀는 엄마가 되었고 또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도 되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가끔은 숨을 돌리며 삶에 대한 애정과 애도 사이에서 서성였던 이야기들을 낮은 목소리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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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위층에 사는 노인들이 행복한 이유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234766.html?h=s
▶장례지도사의 ‘후회 없는 장례식’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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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중 하나가 혼자인 세상-혼자 죽는 게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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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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