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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분위기였다. 건물에서 더 사냐. 처음 날씬하다9월10일 최말자씨(가운데)가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고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손을 들고 있다. 최씨 왼쪽이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오른쪽은 대학 동기인 윤향희씨다. ⓒ시사IN 박미소



“최말자는 무죄다!” “최말자가 해냈다!”


9월10일 최말자씨(79)가 부산지방법원을 나서며 오른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이날 부산지방법원 형사 5부(부장판사 김현순)는 “중상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방위로 인정돼 상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라며 61년 만에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재판정 피고인석에 홀로 서서 선고를 들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일반상환학자금대출이자 변호인석과 방청석, 그리고 재판정 바깥에서 그를 뜨겁게 응원하는 이들이 함께했다.


1964년 5월6일, 당시 18세였던 최말자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 아무개씨(당시 21세)의 혀를 깨물었다. 노씨의 혀 1.5㎝가 잘렸다. 당시 ‘김해 혀 절단 사건’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최씨의 인생이 송 주식 두리째 바뀌었다. 강간미수 피해자 최씨는 도리어 중상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성폭행 방어를 위한 정당방위라는 최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노씨가 혀를 넣었다는 것뿐이지, 그와 같은 강제 키스가 최말자씨 품사 로 하여금 반항을 못하도록 꼼짝 못하게 해놓고 한 것은 아니라 할 것”, “최씨에게 (노씨가) 대담하게도 키스하려는 충동을 일으키는 데 어느 정도의 보탬은 되었을 것이라는 도의적 책임도 있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히려 최씨에게 노씨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돌리는 판결이었다. 최씨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이후, 이 일을 가슴속에 묻었다. 오랜 시간 집매매시 세금 누구와도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최말자씨가 어렵게 기억을 다시 떠올린 건 2018년 여름 무렵이었다. 최씨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컸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게 한이 됐다. 2009년 3월 63세의 나이에 부산 부경중학교에 입학했다. 2013년 3월에는 부산 부경보건고 학습관리 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1학년 때 운명처럼 과 동기인 윤향희씨(56)를 알게 됐다. 두 사람은 12명이 모인 과 스터디 모임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처음 만났다.


스터디 모임 팀장이던 윤향희씨는 치열하게 공부하는 ‘최말자 언니’에게 자꾸 마음이 갔다. 어느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언니를 보면서 일에 치여 공부를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최씨가 온라인으로 과제를 제출하는 방법을 몰라 과락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윤씨는 직접 최씨 집에 찾아가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최씨를 도왔다. 두 사람의 공부는 2017년 윤씨가 먼저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최씨가 6년 반에 걸쳐 학위를 받을 때까지 계속됐다.




9월10일 최말자씨가 재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전 대기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2018년 여름, 최말자씨가 여느 날과 달리 무거운 목소리로 윤향희씨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 졸업 논문을 쓸 수 있는 학점을 다 채웠다. 덕분에 방송대를 졸업하는 첫 번째 꿈을 이뤘다. 두 번째 소원이 하나 있다. 내 한을 풀어달라.” 그러면서 1964년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최씨가 54년이 지나 ‘죄인이라는 오명을 벗어야겠다’라고 결심한 건, 그게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당하게 인권을 침해당하면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 방송대를 다니며 알게 됐다. 배움은 용기가 됐다. 2018년 그해는 ‘미투 운동’이 불길처럼 번졌다. 최씨는 ‘나와 같은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배움은 용기가 되어

윤향희씨는 도움을 줄 만한 곳을 수소문했다. 그러다 여성 인권단체 ‘한국여성의전화(한여전)’를 처음 알게 됐다. 오랜 시간 여성 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여성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활동해온 곳이라고 들었다. 2018년 12월, 윤씨가 먼저 한여전으로 전화를 걸었다. 바로 옆에 있던 최말자씨가 전화를 이어받았다. 최선혜 한여전 사무처장은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그때도 최말자 선생님의 욕구는 선명했다. 자기 사건이 지금의 성폭력 문제와도 연결돼 있고, 그래서 재심을 통해 바로잡는 게 중요한 문제라고 하셨다.” 한여전 활동가들은 어렵더라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최말자씨를 만난 순간, 그건 당연한 일이 됐다.


하지만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우선 재심을 맡을 변호사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한여전에서 몇몇 변호사에게 연락했지만 다들 어렵다며 손사래를 쳤다. 재심은 기존 사법부 판결을 뒤집는 일인 만큼 개시 요건이 엄격하다. 사실관계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명확하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판사·검사·경찰이 직무상 범죄를 저지르는 등 수사·재판의 위법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 사건은 1964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수사·재판 기록을 구할 가능성도 희박했다. 무죄는커녕 재심을 개시하는 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해를 넘겨 2019년, 송란희 한여전 대표는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에게 최말자씨 이야기를 전했다. 김 변호사는 20년 넘게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이주여성에 대한 법률 지원을 해왔다. 2005년 호주제 헌법소원 대리인단 일원으로 합류했고, 2019년에는 낙태죄 위헌 소송 대리인단 단장을 맡았다. 김 변호사는 “판례 속에서만 보던 당사자가 눈앞에 나타나 깜짝 놀랐다. 어려운 사건이지만 당사자의 용기가 크게 다가왔다. 당사자의 진술, 당시 언론보도 등을 통해 어떻게든 재심 개시 사유를 구성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9월10일 최말자씨가 재심 무죄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변호인단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김수정 변호사가 대표 격을 맡고, 같은 법무법인의 이상희·양성우·김예지·전다운 변호사가 최말자씨 변호인단으로 합류했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자료를 찾고 공부한 끝에 2020년 5월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제출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도 확보했다. 최씨가 지나가듯 변호인단에게 “노씨 걔 군대도 가고 그랬다”라고 말한 게 힌트가 됐다. 변호인단은 1심 재판부에 노씨의 병적증명서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그에 따르면 노씨는 당시 판결이 확정되고 6개월도 되지 않아 육군에 입대했고, 군복무 중 베트남에 파병 간 후 만기 전역했다. 김 변호사는 “노씨가 ‘일생을 말 못하는 불구의 몸(1심 판결문)’이 됐다는 주장을 뒤집을 새로운 증거”라고 설명했다.


최말자씨는 재심을 청구한 뒤, 오래된 자신의 사건 기록을 찾기 위해 부산지방법원, 부산지방경찰청, 부산광역시청, 국가기록원을 찾아다녔다.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 나섰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항상 1964년 그날의 성폭력 피해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최씨는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날씨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그날의 상황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나면 며칠을 내리 앓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나의 억울함을 바로잡아야 후손들이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목표가 있어서다. 인터뷰 때 곁을 지키는 동료들도 있었다. 윤향희씨나 배은하 부산여성의전화 성·가정폭력 상담소장이 매번 최씨 인터뷰에 동행했다.


많은 이들의 노력과 달리, 1심 부산지방법원(2021년 2월18일)과 2심 부산고등법원(2021년 9월6일)은 최말자씨 주장에 증거가 없다며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그때마다 최씨는 “18세 소녀가 호랑이가 되어 돌아왔다. 호랑이 눈으로 재판부를 지켜보겠다. 항소(재항고)하겠다”라며 동료들을 위로했다.


대법원 판단이 남았다. 최말자씨는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한여전 활동가들은 그 시간 동안 온라인 서명이나 집담회 등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만들었다. 2020년 5월부터 시작한 온라인 서명에 5년 4개월간 7만7346명이 모였다. 최선혜 사무처장은 “이 문제를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피해자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재판부가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사회적 요구를 모으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최말자씨가 자필로 쓴 재심 무죄선고 관련 기자회견 발언문. ⓒ시사IN 박미소


아직 끝나지 않았다

3년 넘는 심리 끝에, 2024년 12월18일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재항고인은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로서 자신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인 신청외인에게 이 같은 행위를 한 것이었다”라며 최말자씨 주장이 맞다고 볼 정황이 충분하다고 보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7개월 후인 7월2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재심 첫 공판이 열렸다. 18세 최말자씨가 유죄를 선고받은 그때 그 법원이었다. 이날 정명원 부산지검 공판부 부장검사는 피고인석에 앉은 최씨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 사실 자체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과 2차 가해로부터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이 사건에서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했다.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깊이 사죄드린다.” 그러고는 무죄를 구형했다.


두 달 후인 9월10일, 재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로 재심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바로잡은 최초의 사례가 생겼다. 최선혜 사무처장은 “여성 인권운동가 최말자 선생님이 만든 성과”라고 평가했다. 김수정 변호사는 “최말자 선생님은 나의 영웅이자 우리 모두의 영웅이다. 자신을 구하기를 멈추지 않은 사람이 결국은 세상까지 구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번 판결은 재심청구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만으로 개시할 수 있다는, 재심 사건에서 중요한 법리를 남겼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최말자씨는 무죄선고 뒤 가장 먼저 동료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오늘의 이 영광은 여러분의 힘과 노력 덕분이다. 61년 전, 18세 소녀였던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어, 나의 운명은 죄인이 되었다. 주변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만류했지만 이 사건을 묻고 갈 수가 없었다. 나는 운이 참 좋아 주변의 인연들로 용기와 힘, 도움을 받아 오늘 이 자리까지 왔다.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피해자들을 위해 앞장설 수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말자씨는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형사보상금, 손해배상 등을 청구해 자신이 겪은 피해에 대해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을 끝까지 물을 예정이다. 지금껏 동행한 동료들도 그 길을 함께한다.




최말자씨(가운데)가 9월1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시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부산·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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