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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 비슬산 북쪽 기슭의 용연사를 찾아간 건 목불 때문이었다. 2008년 학부 졸업을 앞두고 논문 발표 준비를 하다가 불쑥 불상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당시 내가 다니던 경북대 임산공학과에서는 학부생도 연구실 생활을 했다. 그건 졸업을 위한 필수 코스이기도 했다. 학과의 여러 연구실 중 자신이 희망하는 곳에 소속돼 랩의 규율과 실험 방법을 익히고 그 랩의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졸업논문을 쓰고 발표하고 평가받는 것까지.
사실 나는 학과에 진학한 목적 자체가 나무고고학 분야의 10원야마토게임 권위자인 박상진 교수 연구실에 들어가고 싶어서였다. 목재를 해부해 수종을 밝히는 일이 주였던 그 연구실에서 나는 운이 좋게도 용연사 나무 불상의 수종을 알아내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용연사 불상 연구하며 눈으로 배운 것들
나무는 수종에 따라 구성 세포의 종류와 형태와 크기가 다르다. 종(種)마다 독특한 해부학적 특징 릴게임예시 을 가지므로 목재의 조직을 관찰하면 그 종류를 알아낼 수 있다. 다만 불상처럼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받는 무언가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목불의 수종 식별 연구가 적은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연구 목적이라고 해도 불상을 자르거나 훼손할 수 없으니까. 재료를 얻기 위해선 조금 특별한 방식을 쓴다. (양해를 구하고) 불상을 골드몽릴게임릴게임 (감히) 들어서 바닥을 본다. 떨어졌거나 떨어지기 직전 매달려 있는 길이 3㎜ 이내의 소편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조각을 핀셋으로 모아 밀봉한 뒤 수종 분석을 의뢰할 실험실로 보낸다. 내 앞에 도착한 용연사 나무 불상의 편린도 그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절에서 온 거라며 교수에게 건네받은 시료는 부처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다신릴게임 일주일 길러 자른 내 엄지손톱 정도 될까. 그 파편으로 해부학적 형질을 관찰하기 위한 시료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연구실에 소속돼 공들여 한 일이 그것이었다. 20~30㎛(즉, 0.02~0.03㎜) 두께로 (포를 뜨듯이) 아주 얇게 (실험용 미세 절단기로) 자른 뒤 프레파라트 위에 올려 글리세린으로 덮는 건 조직이 잘 보이도록 편평하게 펼쳐 고정하는 과정 바다이야기룰 이다. 정성과 노력으로 만든 그 시료를 광학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목재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수종을 알아맞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세포의 종류와 형태를 포착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용연사 목불은 은행나무를 깎아 만든 거였다.
은행나무는 생물학적으로 겉씨식물에 속한다. 2억8천만 년 전의 화석으로 발견된 여러 종의 겉씨식물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종이 은행나무다. 목재의 조직을 보면 은행나무는 활엽수가 아니라 침엽수 쪽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을 목재해부학적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도관이 있느냐 없느냐인데, 겉씨식물에는 도관이 없다. 도관은 속씨식물 나무의 체내에서 물을 수송하는 통로다. 겉씨식물에서 그 역할을 가도관, 즉 헛물관이 한다.
은행나무에는 도관이 없다. 용연사 목불 파편의 세포를 관찰하며 나는 배우고 알 수 있었다. 아, 소나무처럼 가도관만 있네. 그 모양이 살짝 찌그러진 원형이네. 가지런하지 않고 들쑥날쑥하구나. 세포 군데군데 별스럽게 뾰족뾰족한 크리스털 결정 모양의 또 다른 세포도 보여. 이게 이형세포(異形細胞)구나!
중국에서 발견된 야생 은행나무 개체들
야생 은행나무 군락. 심어 기르는 은행나무 외에 야생의 개체는 멸종한 것으로 여겼으나 2012년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성과 충칭시 사이에 있는 다루산 석회암지대에서 야생 군락이 발견됐다. 자생지 환경은 아열대성 기후로 온난습윤하다. 중국 윈난대학교 생태 및 지구식물학 연구소 제공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은행나무는 광활한 숲을 이루며 나무고사리, 공룡과 같이 살았다. 지금은 야생에서 살아남은 은행나무 개체가 중국의 단 몇 곳에 불과하지만 2억5천만 년에서 6천만 년 전에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아시아에 넓게 퍼져 20여 종까지 번성했던 생물체가 은행나무 혈통이다. 약 6500만 년 전 지질학적 대격변으로 은행나무는 서너 종만 남았다. 은행나무 열매를 먹고 씨앗을 퍼뜨리는 공룡의 멸종이 은행나무류가 사라지는 데 영향을 미쳤을 거라 한다. 약 700만 년 전을 끝으로 북아메리카의 화석 기록에서 은행나무는 자취를 감췄고, 유럽에서는 약 250만 년 전의 것이 마지막이다. 그럼에도 은행나무 한 종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 생존 전략 중 하나로 학자들은 겉씨식물의 목재 가운데 은행나무 저 혼자 지닌 특별한 세포를 든다.
칼슘과 옥살산이 결합한 무기염류인 옥살산칼슘이 모여 이형세포가 된다. 사람의 체내에서 옥살산칼슘은 신장이나 요로에서 결석이 되어 통증을 일으키지만, 은행나무 체내에서는 항균과 항병원체로 기능하며 나무를 지켜준다.
내가 관찰한 불상의 파편을 현미경으로 분석하며 가도관을 만나고 이형세포를 발견하자 그 불상은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단, 그 목불 전체를 은행나무로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좌불상은 보통 몸체와 밑판과 수인(手印·불상의 손가락 부위)이 따로 제작돼 합체되는 식이므로, 몸체와 밑판과 수인 그 부위 각각의 파편을 분석해야 불상 하나에 들어간 나무 전체를 밝힐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분석한 건 아마도 몸체였을 것이다.
은행나무는 크게 자라기 때문에 불상의 몸체를 제작하기에 적합하다. 오늘날 목조각장 전승전에 출품되는 목불상의 몸체 대부분은 은행나무에서 출발한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수축이 적어서 좋다고 한다. 작업 전 건조에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조각 후 건조하는 과정에서 모양의 변형이 없어서 나무 불상을 만드는 데 최적이라고. 충북대 문화재과학과 연구팀이 우리나라에서 목조 불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전라도 지역의 조선시대 목불 17점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보면, 15점이 은행나무를 깎아 몸체를 만든 거라 한다. 나머지 2점은 오리나무다. 은행나무를 주로 쓴 건 맞지만 은행나무만 쓰지는 않았다는 것. 경남 합천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향나무로, 서울 조계사 목조석가불좌상은 느티나무와 잣나무로 만든 것처럼 더 다양한 나무를 쓰기도 한다.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식물원의 은행나무. 18세기에 심은 것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알려져 있다. 네덜란트 위트레흐트 인터넷신문(DUIC) 제공
은행나무는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리라고 본다. 중국 승려들은 목재와 열매의 가치 때문에 일찍이 은행나무를 재배했고 그 문화는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번졌다. 서양에 은행나무의 존재가 알려진 건 1690년 일본 나가사키에 파견된 네덜란드 사절단의 일원이던 식물학자에 의해서다. 18세기 중반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의 한 식물원에 가장 먼저 도입된 것으로 추정하며 머지않아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지로 번졌다. 지금은 전세계 온대 및 아열대 지역의 정원과 공원에 산다. 해충과 바람에 강하고 도시의 탁한 대기를 다른 나무들보다 잘 견디며 단풍이 아름다워서 가로수로 널리 사랑받는 나무.
은행나무가 용연사 목불의 일부가 되었다는, 전에 몰랐던 사실을 내 손을 거친 실험의 결과로 밝힌 건 무척 짜릿한 경험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도교수의 연구과제에 내가 부분적으로 참여한 것이었지만 그때의 기백만은 거의 연구책임자였다. 발표 준비를 뒤로한 채 용연사를 찾은 것도 그래서였겠지.
절은 학교에서 시내버스를 서너 번 갈아타야 닿을 수 있는 곳-달성군 옥포면-에 있었다. 종무소에 들러 사정을 말하니 주지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스님이 직접 불상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주셨다. 극락전에 모신 목조 좌상을 마주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나무 속 세포의 모양이 부처의 형상과 겹쳐 살짝 어지러웠던 것 같다. 일종의 전율을 느꼈던 걸까. 은행나무 불상에 합장을 올렸던가. 어렴풋하지만 절에 다녀오고 나서야 다시 졸업논문에 전념할 수 있었던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학부를 마치고 나는 생물학과 식물분류학 연구실에 진학했다. 목재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을 얼마간 하고 나니 광합성을 하며 현존하는 더 많은 식물이 궁금해졌다. 그들을 만나서 이름을 불러주고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석사과정을 마친 이듬해였던가, 용연사 극락전의 목불이 복장유물과 함께 국가 보물 제1813호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야 나는 목불의 정식 이름이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라는 걸 알았다.
“태고의 비밀 간직한 채 불변의 상징으로 전승”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국의 고식물학자 앨버트 수어드 경은 자신이 깊이 연구했던 은행나무를 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의 상징으로, 인간의 지성이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세계로부터 전해 내려온 유산으로, 또 헤아릴 수 없는 태고의 비밀을 간직하고 서 있는 나무.”
졸업논문 발표를 준비하다 말고 절에 다녀온 그날 만난 은행나무 가로수는 유독 아름다웠다. 2025년 가을의 끝자락에 그 기억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노란 이파리를 땅에 거의 다 내려놓은 창밖 은행나무를 바라보면서. 은행나무야말로 아득한 지구의 시간을 켜켜이 기록한 경이로운 생명체라는 생각을 하면서.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숲을 읽는 사람’ 저자
※연재 소개: 식물학자가 산과 들에서 식물을 통해 보고 듣고 받아 적은 익숙하지만 정작 제대로 몰랐던 우리 식물 이야기. 4주마다 연재. 기자 admin@119sh.info
대구 달성군 비슬산 북쪽 기슭의 용연사를 찾아간 건 목불 때문이었다. 2008년 학부 졸업을 앞두고 논문 발표 준비를 하다가 불쑥 불상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당시 내가 다니던 경북대 임산공학과에서는 학부생도 연구실 생활을 했다. 그건 졸업을 위한 필수 코스이기도 했다. 학과의 여러 연구실 중 자신이 희망하는 곳에 소속돼 랩의 규율과 실험 방법을 익히고 그 랩의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졸업논문을 쓰고 발표하고 평가받는 것까지.
사실 나는 학과에 진학한 목적 자체가 나무고고학 분야의 10원야마토게임 권위자인 박상진 교수 연구실에 들어가고 싶어서였다. 목재를 해부해 수종을 밝히는 일이 주였던 그 연구실에서 나는 운이 좋게도 용연사 나무 불상의 수종을 알아내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용연사 불상 연구하며 눈으로 배운 것들
나무는 수종에 따라 구성 세포의 종류와 형태와 크기가 다르다. 종(種)마다 독특한 해부학적 특징 릴게임예시 을 가지므로 목재의 조직을 관찰하면 그 종류를 알아낼 수 있다. 다만 불상처럼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받는 무언가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목불의 수종 식별 연구가 적은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연구 목적이라고 해도 불상을 자르거나 훼손할 수 없으니까. 재료를 얻기 위해선 조금 특별한 방식을 쓴다. (양해를 구하고) 불상을 골드몽릴게임릴게임 (감히) 들어서 바닥을 본다. 떨어졌거나 떨어지기 직전 매달려 있는 길이 3㎜ 이내의 소편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조각을 핀셋으로 모아 밀봉한 뒤 수종 분석을 의뢰할 실험실로 보낸다. 내 앞에 도착한 용연사 나무 불상의 편린도 그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절에서 온 거라며 교수에게 건네받은 시료는 부처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다신릴게임 일주일 길러 자른 내 엄지손톱 정도 될까. 그 파편으로 해부학적 형질을 관찰하기 위한 시료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연구실에 소속돼 공들여 한 일이 그것이었다. 20~30㎛(즉, 0.02~0.03㎜) 두께로 (포를 뜨듯이) 아주 얇게 (실험용 미세 절단기로) 자른 뒤 프레파라트 위에 올려 글리세린으로 덮는 건 조직이 잘 보이도록 편평하게 펼쳐 고정하는 과정 바다이야기룰 이다. 정성과 노력으로 만든 그 시료를 광학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목재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수종을 알아맞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세포의 종류와 형태를 포착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용연사 목불은 은행나무를 깎아 만든 거였다.
은행나무는 생물학적으로 겉씨식물에 속한다. 2억8천만 년 전의 화석으로 발견된 여러 종의 겉씨식물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종이 은행나무다. 목재의 조직을 보면 은행나무는 활엽수가 아니라 침엽수 쪽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을 목재해부학적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도관이 있느냐 없느냐인데, 겉씨식물에는 도관이 없다. 도관은 속씨식물 나무의 체내에서 물을 수송하는 통로다. 겉씨식물에서 그 역할을 가도관, 즉 헛물관이 한다.
은행나무에는 도관이 없다. 용연사 목불 파편의 세포를 관찰하며 나는 배우고 알 수 있었다. 아, 소나무처럼 가도관만 있네. 그 모양이 살짝 찌그러진 원형이네. 가지런하지 않고 들쑥날쑥하구나. 세포 군데군데 별스럽게 뾰족뾰족한 크리스털 결정 모양의 또 다른 세포도 보여. 이게 이형세포(異形細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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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은행나무 군락. 심어 기르는 은행나무 외에 야생의 개체는 멸종한 것으로 여겼으나 2012년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성과 충칭시 사이에 있는 다루산 석회암지대에서 야생 군락이 발견됐다. 자생지 환경은 아열대성 기후로 온난습윤하다. 중국 윈난대학교 생태 및 지구식물학 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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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슘과 옥살산이 결합한 무기염류인 옥살산칼슘이 모여 이형세포가 된다. 사람의 체내에서 옥살산칼슘은 신장이나 요로에서 결석이 되어 통증을 일으키지만, 은행나무 체내에서는 항균과 항병원체로 기능하며 나무를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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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는 크게 자라기 때문에 불상의 몸체를 제작하기에 적합하다. 오늘날 목조각장 전승전에 출품되는 목불상의 몸체 대부분은 은행나무에서 출발한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수축이 적어서 좋다고 한다. 작업 전 건조에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조각 후 건조하는 과정에서 모양의 변형이 없어서 나무 불상을 만드는 데 최적이라고. 충북대 문화재과학과 연구팀이 우리나라에서 목조 불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전라도 지역의 조선시대 목불 17점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보면, 15점이 은행나무를 깎아 몸체를 만든 거라 한다. 나머지 2점은 오리나무다. 은행나무를 주로 쓴 건 맞지만 은행나무만 쓰지는 않았다는 것. 경남 합천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향나무로, 서울 조계사 목조석가불좌상은 느티나무와 잣나무로 만든 것처럼 더 다양한 나무를 쓰기도 한다.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식물원의 은행나무. 18세기에 심은 것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알려져 있다. 네덜란트 위트레흐트 인터넷신문(DUIC) 제공
은행나무는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리라고 본다. 중국 승려들은 목재와 열매의 가치 때문에 일찍이 은행나무를 재배했고 그 문화는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번졌다. 서양에 은행나무의 존재가 알려진 건 1690년 일본 나가사키에 파견된 네덜란드 사절단의 일원이던 식물학자에 의해서다. 18세기 중반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의 한 식물원에 가장 먼저 도입된 것으로 추정하며 머지않아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지로 번졌다. 지금은 전세계 온대 및 아열대 지역의 정원과 공원에 산다. 해충과 바람에 강하고 도시의 탁한 대기를 다른 나무들보다 잘 견디며 단풍이 아름다워서 가로수로 널리 사랑받는 나무.
은행나무가 용연사 목불의 일부가 되었다는, 전에 몰랐던 사실을 내 손을 거친 실험의 결과로 밝힌 건 무척 짜릿한 경험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도교수의 연구과제에 내가 부분적으로 참여한 것이었지만 그때의 기백만은 거의 연구책임자였다. 발표 준비를 뒤로한 채 용연사를 찾은 것도 그래서였겠지.
절은 학교에서 시내버스를 서너 번 갈아타야 닿을 수 있는 곳-달성군 옥포면-에 있었다. 종무소에 들러 사정을 말하니 주지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스님이 직접 불상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주셨다. 극락전에 모신 목조 좌상을 마주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나무 속 세포의 모양이 부처의 형상과 겹쳐 살짝 어지러웠던 것 같다. 일종의 전율을 느꼈던 걸까. 은행나무 불상에 합장을 올렸던가. 어렴풋하지만 절에 다녀오고 나서야 다시 졸업논문에 전념할 수 있었던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학부를 마치고 나는 생물학과 식물분류학 연구실에 진학했다. 목재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을 얼마간 하고 나니 광합성을 하며 현존하는 더 많은 식물이 궁금해졌다. 그들을 만나서 이름을 불러주고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석사과정을 마친 이듬해였던가, 용연사 극락전의 목불이 복장유물과 함께 국가 보물 제1813호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야 나는 목불의 정식 이름이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라는 걸 알았다.
“태고의 비밀 간직한 채 불변의 상징으로 전승”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국의 고식물학자 앨버트 수어드 경은 자신이 깊이 연구했던 은행나무를 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의 상징으로, 인간의 지성이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세계로부터 전해 내려온 유산으로, 또 헤아릴 수 없는 태고의 비밀을 간직하고 서 있는 나무.”
졸업논문 발표를 준비하다 말고 절에 다녀온 그날 만난 은행나무 가로수는 유독 아름다웠다. 2025년 가을의 끝자락에 그 기억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노란 이파리를 땅에 거의 다 내려놓은 창밖 은행나무를 바라보면서. 은행나무야말로 아득한 지구의 시간을 켜켜이 기록한 경이로운 생명체라는 생각을 하면서.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숲을 읽는 사람’ 저자
※연재 소개: 식물학자가 산과 들에서 식물을 통해 보고 듣고 받아 적은 익숙하지만 정작 제대로 몰랐던 우리 식물 이야기. 4주마다 연재. 기자 admin@119sh.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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