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이 지났다. 국민의 힘으로 계엄은 저지됐다. 민주주의는 복원됐고, 경제는 회복 중이다.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한편 12.3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도 다시 살펴본다.







지난해 12월3일 계엄선포 이후 국회 앞을 사람들이 가득 채운 모습. /사진제공=A씨.



릴짱 전 국민을 충격에 안긴 지난해 12월3일 밤.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강행한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회로 향했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로 달랐지만 이유는 같았다. 선배 세대가 피로 만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참극을 막아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머니투데이는 비상계 사이다쿨 엄 1년을 맞아 계엄 당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시민 5명과 만났다.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에게 그날 밤의 충격은 여전히 생생했다. 다시 같은 일이 벌어져도 국회로 가겠다는 의지도 확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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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선포' 듣자마자 국회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로 향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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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이씨가 계엄 당일 현장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사진제공=최윤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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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최윤이씨(28)씨는 계엄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향했다. 밤 10시30분 장례식장에서 텔레그램을 확인한 그는 "40여년간 없던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영등포 집 근처에 군이 깔렸을 것이란 불안보다 국회로 가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가까스로 잡은 택시에서 기사도 손을 떨고 있었다. 기사 릴게임손오공 는 "위험하다"고 했지만 최씨가 "안 가는 게 더 무섭다"고 말하자 "가까운 곳까지 가보겠다"며 차를 몰았다.

여의도에 도착한 그는 장갑차와 군 차량을 목격했다. 적막한 거리를 지나 국회 앞 시민 무리를 보며 "오히려 안심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피로 바꿔온 역사를 투쟁으로 지켜야 했다"며 "돌이켜보면 '죽어도 가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최씨가 택시에 탔을 때쯤 대학원생 강현씨(25)도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섰다. 밤 11시 이후 도착한 국회 정문 앞에서는 시민 150여명이 모였다. 여의도 상공에도 헬기 여러 대가 보였다. 경찰과 시민이 대치하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다 경찰에 신원 확인을 요구받기도 했다.
강씨는 "경찰도 시민들도 처음 맞는 상황에 불안해 보였다"며 "상황이 더 나빠지면 국회로 뛰어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3일 강현씨는 국회 앞 대로에서 군용 차량이 등장하고 경찰관들이 현장을 통제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사진제공=강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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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시민 "날 쏘고 가라", 한강 소설 읽다가 국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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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겪는 계엄에 당황한 강씨와 다르게 문혁씨(73)는 차를 몰고 용산 미군기지 근처부터 둘러봤다. 평생 서울에서 살며 사업을 하다 은퇴한 문씨는 "계엄의 무서움을 알기에 잡히면 큰일이라 생각했지만 시민들이 모인다는 소식을 듣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고 했다.

국회 정문에서는 군인들이 버스에서 내려 담장을 넘으려 하고 있었다. 문씨는 지인과 함께 군인들을 끌어내렸고 시민들은 스크럼을 짜 병력을 막아섰다. 그는 군인에게 백발을 보여주며 말했다. "살 만큼 살았으니 나를 총으로 쏘고 넘어가라." 지휘관은 결국 병력을 철수했다.
'군홧발에 찍힐 수도 있겠는데….' 문씨가 생각할 때쯤, 문예창작과 학생 채윤씨(20)가 서대문구 집에서 '계엄 선포' 메시지를 봤다. 그는 한강 작가 소설을 읽고 기말 비평 과제를 하던 중이었다. 채씨는 "AI(인공지능)가 만든 가짜라고 생각했다. 계엄일 리가 없지 않냐"라고 생각하다가 뉴스를 보고 곧장 짐을 챙겼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튿날인 4일 새벽 1시30분쯤 국회 앞에 도착한 그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계엄철폐", "독재타도" 구호를 실제로 들었다. 국회 본회의에서 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채씨는 "대통령이 계엄 취소를 안 하니 계속 국회 앞을 지켰다"고 했다.



서울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두고 플루트를 부는 채윤씨(20) 모습이 지난 4월4일 오전 본지 카메라에 잡혔다. 채씨는 계엄 사태 이후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하며 플루트를 연주했다. /사진=머니투데이.


그날 밤 집에서 계엄 소식을 들은 20대 남성 A씨도 친구들과 국회로 향했다. A씨는 "명백한 잘못이 있으니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연히 파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4일 뒤 예상치 못하게 탄핵 소추안이 부결됐다"고 말했다. 이어 "계엄 당일 국회에 간 절 칭찬한 친구가 탄핵이 인용되자 크게 화를 내더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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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밤 뒤에 남은 것들…"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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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해제 후 1년 동안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정국 변화를 지켜봤다. 최씨는 "지난해 12월3일은 내게 동력이 됐다"며 "승리의 기적을 만든 순간이 지난 1년간 힘들고 지칠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장면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혐중 시위 등 갈등의 극단화를 보며 "연대가 흩어지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강씨는 "12·3 계엄 당일보다 그 이후 더 황당한 순간이 많았다"며 "모두가 분명 계엄이 잘못됐다고 했는데 그 다음 주부터 '계몽', '윤어게인'을 외치며 양극화되는 모습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지난한 특검 수사와 재판 과정에는 비판적이다. 강씨는 "계엄 이후 1년이 지났고 특검도 3개를 했는데 지금 결과물이 뭐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문씨가 고사성어 '공휴일궤'를 한자로 써 내려가고 있다. /사진=최문혁 기자.


문씨는 내란 혐의 재판을 두고 '공휴일궤'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린다고 했다. 겨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서 공들여 쌓은 산이 한꺼번에 무너진다는 뜻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책임을 묻고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씨는 "계엄을 직접 겪어보고 나니까 누구도 다시는 그런 일을 겪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며 "말단 공무원부터 색출하겠다는 건 가지치기밖에 안 되고 정당 정치인부터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A씨는 "무조건 진보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도 어느새 소셜미디어에 부정선거, 윤어게인을 올리고 있더라"라며 "계엄을 선포한 12월3일 이후에 정서적 내전이 더 심해졌다. 정치가 종교처럼 변해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정치권에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손을 내밀어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김서현 기자 ssn3592@mt.co.kr 이정우 기자 vanilla@mt.co.kr 최문혁 기자 cmh6214@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