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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수여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12-02 21:25조회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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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권 기자]
▲ 온금동 사진 온금동 내화벽돌 굴뚝과 시커먼 철골뼈대만 나아 있는 상태.
ⓒ 권성권
1909년에 시작하던 '다방'은 서양 문물을 접한 엘리트들이 운영하던 공간이었죠. 시인 이상도 황금성릴게임사이트 서울 청진동 종로1가에 '제비다방'을 운영했죠. 대구지역 최초라고 알려진 '아루스다방'은 화가 이인성이 운영을 했고요. 그 당시 다방에선 예술가와 문인들이 많이 드나들었죠. 조영남·송창식·윤형주·양희은 같은 가수도 다방에서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예술 활동을 시작했으니까요.
목포의 문인과 예술인들이 자주 모인 바다이야기하는법 장소는 '오거리 다방 일대'였어요. 황실다방·야자수다방·초원다방은 시화전과 출판기념회가 자주 열렸고, 오아시스다방·해태다방은 음악회와 토론장으로 사용했고, 봉선화다방·아담다방·밀물다방·나나다방은 젊은 문인과 화가들이 교류를 했죠. 1960년대 초 김현·최하림·김승옥이 참여한 문학 동인도 오거리 다방에서 태동이 됐죠. 지금은 밀물다방만 하나 남아 있지만 카페 릴게임다운로드 로 변신한 상태죠.
"예전에는 신에 대한 모독이 최대의 모독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고, 따라서 모독자도 죽었다. 지금은 대지에 대한 모독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탐구할 수 없는 것의 내장을 대지의 의미보다 더 존중하는 것도."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황문수 옮김)에 나오는 말이에요. 오래 전에 사이다쿨 출간된 책이라 지금은 절판된 책이에요. 그런데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은 종교적인 신의 부재를 선언한 게 아니었죠. 서구 사회를 지탱해온 기독교적 가치와 초월적 세계관이 더 이상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말한 것이죠. 그 책에서 기존의 도덕과 종교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인간상'을 말한 것도, 삶을 긍정하고 반복되는 존재를 받 바다신릴게임 아들이는 '영원회귀'를 말한 것도, 그런 연유였죠.
1844년 독일 뢰켄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니체는 24살에 스위스 바젤대 교수로 임명되죠. 하지만 1879년 건강 악화로 10년 간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전업 철학자로 활동하면서 1883년 그라우뷘덴 주(Graubünden)의 실스마리아(Sils-Maria)에서 그 책을 집필했어요. 1889년 그의 나이 44살엔 토리노의 길거리에서 말에게 채찍질하는 광경을 보고 말에 달려들어 껴안을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후, 1900년 55세의 나이로 뇌졸중과 폐렴 합병증으로 독일 바이마르에서 죽죠. 죽음 앞에서는 '초인'의 이상을 결코 실천하지 못한 셈이었죠.
그때라도 그가 신에게 돌아왔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자기 내면의 '초인'을 넘어선 초월자를 바라보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초기에 스승으로 여긴 바그너와도 화해했겠죠. 그가 스위스의 바젤대학 교수로 몸담을 때 루체른 근교의 트리프셴 집에 거주하던 바그너를 찾아가 가깝게 지냈으니까요. 바그너가 그곳에서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일부를 집필할 때 니체도 찬사를 보냈고 그걸 기반으로 니체가 〈비극의 탄생〉을 썼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끝내 스스로 '초인'을 고집하다 55세로 생을 마감했죠.
현재 스위스의 실스마리아에는 '니체 하우스'(Nietzsche-Haus)가 있다고 해요. 그곳은 니체가 실제로 여름마다 머물던 집이라고 하죠. 니체는 그곳에서 '영원회귀' 사상을 떠올렸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그곳의 산책길에서 번개처럼 영감이 떠올랐다고 하죠. 혹시라도 내년 여름 서유럽 성지 순례를 갈 기회가 있다면 그곳에 들러 역설적인 생각을 해보고 싶긴 해요.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딤후4:22)
바울이 로마의 지하 감옥 마메르틴(Carcere Mamertino)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내용이죠. 겨울이 오기 전에 디모데가 자신을 찾아왔으면 좋겠지만, 혹여 그렇지 못한다 해도 초월자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디모데와 동료를 감싸주길 바란 것이죠.
실은 그 감옥에 베드로도 갇혔었죠. 현재 그 감옥은 산 주세페 데이 팔레그나미 성당 아래에 자리하고 있죠. 로마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왕 '앙쿠스 마르키우스'가 지하 2층에 만든 저수조였는데 후에 감옥으로 사용된 셈이죠. 대중의 관심사가 높은 범죄자들만 그곳에 수감했다고 하죠. 지금도 그곳을 관람하는 성지순례객들은 저마다 숙연한 마음을 갖는다고 해요. 더욱이 바울처럼 자기 생의 마지막이 됐을 때 누군가를 격려하면서 세상을 떠난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죠.
현재 목포의 온금동은 '오거리 다방 일대'와 마주한 곳이에요. 다만 온금동의 개발은 멈춰선 상태죠. 오래전 내화 벽돌을 생산한 붉은 공장지대를 앞으로도 보존해야 한다는 이유에요. 하지만 목포 사람이나 목포를 드나드는 관광객이 볼 때 과연 그 의미를 깊게 헤아릴까 싶죠.
차라리 두 곳을 스위스의 실스마리아와 생모리츠처럼 만들면 어떨까요? 서로 10분 거리지만 실스마리아는 문학과 철학의 영감을 주는 곳으로, 생모리츠는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었으니까요. 그런 관점으로 목포 '오거리 다방 일대'를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곳으로 되살리고 온금동은 유명한 관광지로 개발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찾오는 성지가 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온금동 사진 온금동 내화벽돌 굴뚝과 시커먼 철골뼈대만 나아 있는 상태.
ⓒ 권성권
1909년에 시작하던 '다방'은 서양 문물을 접한 엘리트들이 운영하던 공간이었죠. 시인 이상도 황금성릴게임사이트 서울 청진동 종로1가에 '제비다방'을 운영했죠. 대구지역 최초라고 알려진 '아루스다방'은 화가 이인성이 운영을 했고요. 그 당시 다방에선 예술가와 문인들이 많이 드나들었죠. 조영남·송창식·윤형주·양희은 같은 가수도 다방에서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예술 활동을 시작했으니까요.
목포의 문인과 예술인들이 자주 모인 바다이야기하는법 장소는 '오거리 다방 일대'였어요. 황실다방·야자수다방·초원다방은 시화전과 출판기념회가 자주 열렸고, 오아시스다방·해태다방은 음악회와 토론장으로 사용했고, 봉선화다방·아담다방·밀물다방·나나다방은 젊은 문인과 화가들이 교류를 했죠. 1960년대 초 김현·최하림·김승옥이 참여한 문학 동인도 오거리 다방에서 태동이 됐죠. 지금은 밀물다방만 하나 남아 있지만 카페 릴게임다운로드 로 변신한 상태죠.
"예전에는 신에 대한 모독이 최대의 모독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고, 따라서 모독자도 죽었다. 지금은 대지에 대한 모독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탐구할 수 없는 것의 내장을 대지의 의미보다 더 존중하는 것도."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황문수 옮김)에 나오는 말이에요. 오래 전에 사이다쿨 출간된 책이라 지금은 절판된 책이에요. 그런데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은 종교적인 신의 부재를 선언한 게 아니었죠. 서구 사회를 지탱해온 기독교적 가치와 초월적 세계관이 더 이상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말한 것이죠. 그 책에서 기존의 도덕과 종교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인간상'을 말한 것도, 삶을 긍정하고 반복되는 존재를 받 바다신릴게임 아들이는 '영원회귀'를 말한 것도, 그런 연유였죠.
1844년 독일 뢰켄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니체는 24살에 스위스 바젤대 교수로 임명되죠. 하지만 1879년 건강 악화로 10년 간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전업 철학자로 활동하면서 1883년 그라우뷘덴 주(Graubünden)의 실스마리아(Sils-Maria)에서 그 책을 집필했어요. 1889년 그의 나이 44살엔 토리노의 길거리에서 말에게 채찍질하는 광경을 보고 말에 달려들어 껴안을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후, 1900년 55세의 나이로 뇌졸중과 폐렴 합병증으로 독일 바이마르에서 죽죠. 죽음 앞에서는 '초인'의 이상을 결코 실천하지 못한 셈이었죠.
그때라도 그가 신에게 돌아왔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자기 내면의 '초인'을 넘어선 초월자를 바라보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초기에 스승으로 여긴 바그너와도 화해했겠죠. 그가 스위스의 바젤대학 교수로 몸담을 때 루체른 근교의 트리프셴 집에 거주하던 바그너를 찾아가 가깝게 지냈으니까요. 바그너가 그곳에서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일부를 집필할 때 니체도 찬사를 보냈고 그걸 기반으로 니체가 〈비극의 탄생〉을 썼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끝내 스스로 '초인'을 고집하다 55세로 생을 마감했죠.
현재 스위스의 실스마리아에는 '니체 하우스'(Nietzsche-Haus)가 있다고 해요. 그곳은 니체가 실제로 여름마다 머물던 집이라고 하죠. 니체는 그곳에서 '영원회귀' 사상을 떠올렸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그곳의 산책길에서 번개처럼 영감이 떠올랐다고 하죠. 혹시라도 내년 여름 서유럽 성지 순례를 갈 기회가 있다면 그곳에 들러 역설적인 생각을 해보고 싶긴 해요.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딤후4:22)
바울이 로마의 지하 감옥 마메르틴(Carcere Mamertino)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내용이죠. 겨울이 오기 전에 디모데가 자신을 찾아왔으면 좋겠지만, 혹여 그렇지 못한다 해도 초월자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디모데와 동료를 감싸주길 바란 것이죠.
실은 그 감옥에 베드로도 갇혔었죠. 현재 그 감옥은 산 주세페 데이 팔레그나미 성당 아래에 자리하고 있죠. 로마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왕 '앙쿠스 마르키우스'가 지하 2층에 만든 저수조였는데 후에 감옥으로 사용된 셈이죠. 대중의 관심사가 높은 범죄자들만 그곳에 수감했다고 하죠. 지금도 그곳을 관람하는 성지순례객들은 저마다 숙연한 마음을 갖는다고 해요. 더욱이 바울처럼 자기 생의 마지막이 됐을 때 누군가를 격려하면서 세상을 떠난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죠.
현재 목포의 온금동은 '오거리 다방 일대'와 마주한 곳이에요. 다만 온금동의 개발은 멈춰선 상태죠. 오래전 내화 벽돌을 생산한 붉은 공장지대를 앞으로도 보존해야 한다는 이유에요. 하지만 목포 사람이나 목포를 드나드는 관광객이 볼 때 과연 그 의미를 깊게 헤아릴까 싶죠.
차라리 두 곳을 스위스의 실스마리아와 생모리츠처럼 만들면 어떨까요? 서로 10분 거리지만 실스마리아는 문학과 철학의 영감을 주는 곳으로, 생모리츠는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었으니까요. 그런 관점으로 목포 '오거리 다방 일대'를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곳으로 되살리고 온금동은 유명한 관광지로 개발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찾오는 성지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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